[데스크칼럼] 한 데나리온과 기본소득

입력 2021-08-23 06:00

최영희 IT중소기업부장

필자가 전세로 사는 빌라 1층에 오래된 이발소가 얼마 전 문을 닫았다. 이십 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곳이지만 늘어나는 미용실과 바뀐 트렌드에 더는 버티기 힘겨웠던 것. 이발소가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생각해 보니 필자 집에서 걸어 5분 거리 안에 갈 수 있는 미용실만 10여 곳에 이른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발소가 문을 닫은 다음 날부터 시끄럽다. 뚝딱뚝딱 드르륵. 요란한 공사가 이어지더니 약 1주일 만에 무인 상점이 들어섰다. 아이스크림과 과자ㆍ음료를 파는 프렌차이즈 무인 가게다.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용하던 저녁 시간이 시끄럽다. 소비자들이 연신 북적여서다. 바로 앞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 점주는 못마땅한 표정이 역력하다. 가격이 상대적으로 싼 무인 가게가 바로 앞에 들어섰으니 속이 탈 수밖에 없을 터.

무인 가게의 등장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일상화. 최저임금 인상과 요지부동인 임대료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된다.

무인 가게가 늘어나면서 키오스크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기준 전 세계 키오스크 시장은 23조 원으로 추정된다. 매년 12.3% 성장해 2028년까지 58조 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키오스크 시장의 경우 정확한 집계가 없지만, 업계는 지난해 기준 3000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도 20% 이상의 성장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걱정이 되는 건 일자리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이들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단순한 업무를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설 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이는 소득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

실제 통계청이 19일 발표한 ‘2분기 가계동향조사’만 봐도 그렇다. 조사에 따르면 올해 2분기에 상위 20% 부자들만 소득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상위 20%와 하위 20% 간 소득 격차로 보는 분배 지표는 더 나빠졌다.

낮은 곳에 있는 이들이 코로나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 수치로 확인된 셈이다.

일자리를 비롯한 경제적인 문제는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백종우 경희대 교수 연구팀이 19일 내놓은 ‘코로나19 공중보건 위기에 따른 정신건강 및 사회심리 영향평가’ 1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코로나19 상황에서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더 큰 우울감을 느끼고 질병에 걸릴 우려를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이 낮을수록 건강관리가 어려워 앓는 질병이 많아지기도 하고, 질병을 이유로 직업 선택이 제한돼 소득이 낮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다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복지 측면에서 허술한 측면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노인 빈곤율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43% 수준이니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노인 둘 중 한 명은 빈곤층인 셈이다.

해답은 어디에 있을까.

성경 마태오 복음 20장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이야기가 나온다. 포도밭 주인이 이른 아침,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오후 5시 등 다른 시각에 일꾼을 모아 일을 시키고는 일한 시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일한 품삯(한 데나리온)을 준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인 공정 개념으론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당연히 이른 아침에 와서 온종일 일한 사람들이 자신들과 마지막에 온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투덜거리자, 포도밭 주인은 맨 처음에 온 일꾼과 맨 마지막에 온 일꾼에게 똑같은 품삯을 주는 것이 자기 뜻이라며 일축해 버린다.

이 이야기엔 이 세상에 노동시간에 비례해서 보수를 지급하는 원리와 함께, 노동시간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똑같은 금액을 주는 경제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 ‘한 데나리온’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기본소득인 셈이다.

핀란드, 독일, 스페인 등에선 다양한 형태로 기본소득을 실험 중이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소모적인 정치 논리에서 벗어나 적절하고 현실 가능한 방안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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