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학중의 가족 이야기] ‘손주바보’가 된 할아버지들

입력 2015-10-1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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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

60대의 선배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할아버지가 된 사람들이어서 육아 얘기가 나왔는데 60대의 한국 남자들이 육아에 대해 걱정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지만 그 얘기의 깊이에 놀랐다. 모두들 육아로 고민하는 딸자식을 지켜보며 손주 보느라 고생하는 아내의 하소연을 들었기에 할 수 있는 생생한 얘기였다.

육아는 여성의 일이나 그 부모의 일만은 아니다. 우리 회사 일이요, 우리 사회의 문제요, 국가적인 당면 과제이다. 부모가 애지중지 온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들을 기업의 귀중한 인적 자원으로 제공하고 납세나 병역의 의무를 다하는 국가의 자산으로 바치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 문제가 사회적 문제나 범죄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아이들을 잘 키워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하는 것이 국가 예산을 절감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육아 문제를 단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손주들의 육아에 동참하는 운동을 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오늘의 할아버지들은 자기 자식의 출산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녀들과 함께 하는 즐거운 시간을 별로 가져 보지 못한 세대다.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면서 자식 키우는 것은 아내 일이라고 믿었던 세대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들이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자랑하고 손주가 눈에 밟혀 술자리도 마다하고 서둘러 귀가를 한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딸네 집이나 자신의 집에서 손주 보는 날로 아예 비워놓는가 하면 ‘손주 사랑교실’에 참여해 할아버지 역할을 적극적으로 배우기도 한다. 손주라는 ‘마약’에 빠져 손주바보가 되어 버린 것이다.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초승달 눈으로 웃으며 할아버지 옆에 껌처럼 달라붙어 “하찌 하찌”를 연발하는 손주, 고 연한 얼굴을 부비며 찐한 뽀뽀세례를 퍼붓는 손주 앞에서 할아버지들이 녹아버리는 것이다.

손주가 없는 사람들은 “손주 자랑하려면 이제 돈을 내고 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손주들과 함께 하는 ‘그 맛’에 할아버지들이 완전히 빠져버린 것이다. 넥타이 풀어 이마에 동여매고 혁대 풀어 노 저으며 술 마시고 노래 부르던 그 재미와는 비교할 수 없는 ‘참기쁨’을 왜 진작 맛보지 못했을까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할아버지가 손주 돌보는 일을 잘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다. 주 양육자 역할은 못 하지만 딸아이나 며느리, 아내를 돕는 역할은 배우고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활동적인 손자들과 역동적으로 놀아주는 것은 할머니보다 더 잘할 수 있다.

아이 키우는 것은 여자 일이고 손주 돌보는 것은 할머니나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제 남성들이 육아의 권리를 되찾을 때가 되었다. 육아는 고생스럽기만 한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도 함께 주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외로움과 상실감으로 우울했던 일상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면서 활기와 웃음으로 가득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주를 돌보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손주들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정서적인 안정감을 얻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자주 만나며 그 관계가 좋은 아이들은 어른을 대하는 태도나 말씨, 식습관, 교우관계도 남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손주들과 함께 하는 일상을 통해 긴긴 노년기, 24시간이 여가인 365일을 웃음과 활기로 다시 가꾸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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