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기업 사무직으로 일하는 Q씨(가명ㆍ여)는 레즈비언이다. 입사한 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직장 동료에게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커밍아웃’을 한 적이 없다. 동료들이 평소에 성소수자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최근 이태원 클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뒤에는 상황이 더 심해졌다. 밥을 먹다가도 동료들은 “게이들이 다 망쳐놨다” “동성애자들이 너무 싫다”는 말을 갑자기 하곤 한다.
최근 이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Q씨는 “회사 동료들은 성소수자라는 존재 자체를 낯설어해요. 커밍아웃하면 동료들의 입방아에 오를 거고, 누군가는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할 거예요. 커밍아웃은 ‘긁어 부스럼’이죠.”
커밍아웃을 단념한 Q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다. 무엇보다 ‘나를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힘들다고 털어놨다.
“직장 동료와는 일 얘기만 하진 않잖아요. 사적인 대화를 하며 관계를 쌓아가는 건데, 흔한 대화 주제로 오르는 결혼, 출산, 육아, 연애 이야기에 끼지 못하게 돼요.”
Q씨는 사귀는 동성 짝꿍이 있다. 입사 후 직장 상사에게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얼떨결에 “있다”고 답한 뒤 곤욕을 치렀다. 회사 사람들은 그 남자친구가 몇 살인지, 군대는 다녀왔는지 등을 물었다. ‘여성’ 파트너를 ‘남성’으로 바꿔 말하려다 보니 직업과 나이 등을 꾸며내야 했다. 어느 순간 짝꿍은 가상의 인물이 돼버렸다. 그 뒤로는 만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해버린다.
기본적인 사내복지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얼마 전 짝꿍의 가족이 상을 당했다. 장례식장이 지방에 있어 연차를 내야 했지만, 상황을 설명할 순 없었다. 법적인 혼인 관계에만 주어지는 혜택도 받을 수 없다. Q씨는 “어떤 형태로든 결혼하겠지만 신혼여행도 못 가고 경조사비도 받을 수 없을 것”이라며 “가족수당이나 의료비 할인 등의 복지도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조사에 따르면 성소수자의 규모는 전체 인구의 약 2.7%로 추정된다. 52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인 중 140만 명이 성소수자일 수 있는데, 직장 내에서는 왜 쉽게 찾을 수 없을까. 그만큼 우리의 일터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성소수자 86%가 Q씨처럼 직장에서 정체성을 감춘 채 살고 있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도 있다. 동료 중에 성소수자가 있어도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코로나19 등 여러 계기로 물밑에 있던 성소수자의 존재가 가시화되고 있지만, 정작 일터에서는 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와 논의가 더디다.
재계 관계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바로잡아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기업문화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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