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차별받는 성소수자 직장인들 "있는 그대로 봐주면 안되나요?"

입력 2020-05-24 11:00 수정 2020-05-25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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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성소수자 44%, 직장 내 차별 경험…"기업, 직원들 이해도 높이는 역할 할 수 있어"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

성소수자는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발표한 ‘성적 지향ㆍ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커밍아웃 한 성소수자 44%가 성 정체성을 이유로 직장 생활에 차별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업무 배치나 임금,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많았고, 사직을 요구받은 경우도 있었다.

◇숨겨도, 드러내도 ‘차별 위험’ 여전=차별과 배제가 두려운 성소수자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데 모든 신경을 기울인다. 시민단체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행성인)가 발간한 인터뷰집 ‘나, 성소수자 노동자’와 인권위 보고서에는 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중견 기업에 근무하는 트렌스젠더 A씨는 항상 주민등록증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 혹시나 주민등록증을 떨어뜨리면 아웃팅(성 정체성을 원치않게 드러내는 것)이 되고, 최악의 경우 직장을 새로 구해야하는 상황을 겪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거짓말도 필수다. 백화점에서 일하는 게이 B씨는 “직장 동료들이 평소 내 행동이나 말투를 접하고 웃거나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성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친한 여성 친구의 사진을 보여주며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해놓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성 정체성이 원치 않게 드러난 뒤 동료들이 이를 약점 삼아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양성애자 C씨는 직장에서 아웃팅을 당한 뒤 “잘리거나 알려지기 싫으면 자신과 잠자리를 갖자”는 말을 사장에게 들어야 했고, 결국 그녀는 회사를 떠났다.

직장내 괴롭힘을 당한 뒤 회사에 도움을 요청해도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다. 차별을 겪은 D씨는 정체성을 밝히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동료들은 되려 그를 외면했다.

◇보호 장치 드물고, 잘 지켜지지 않아=국내 기업 중에는 성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갖춘 곳도 있다. 포스코는 윤리 규범에 ‘성 정체성을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을 하지 않고 개인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규정을 뒀다. 하지만, 이런 기업은 일부에 불과하다.

인권위 조사에 참여한 취업자 중 단 3.7%만이 “직장 내에 성소수자를 위한 제도나 인식 개선 교육, 우호적인 캠페인 등이 있다”고 응답했다.

성소수자에 배타적인 사내 문화에는 이들을 낯설어하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적 시선도 한몫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은 2019년 ‘사회통합실태조사’를 실시하며 소수자를 얼마나 배타적으로 생각하는지 물어봤는데 결과는 심각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57%는 성소수자에 배타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는 북한 이탈주민(25%), 외국인 노동자(11%)를 수용하기 어렵다고 답한 비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이종걸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는 기본적으로 성소수자를 시민으로 받아들였던 경험이 전무하다”며 “이로 인해 기업에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음에도 성소수자들이 회사생활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지난해 5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주한미국대사관에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시스)

◇성소수자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가 있다=전문가들은 성소수자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성소수자가 자신을 숨기지 않고도 안전하게 일할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 사무국장은 “성소수자들이 받는 차별이 사라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이뤄지기 힘들다”며 “당장 제도 개선이 어렵다면 회사에서 성소수자 인식 개선 교육이 이뤄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기업이 기존에 정기적으로 시행하던 성평등, 사내 교육에 성소수자에 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내용을 추가하는 식이다.

Q씨는 “아무리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식인 제도라고 해도 회사 차원에서 직원들의 권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내주는 것이 힘이 된다”며 “이미 시행 중인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 도움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 스스로가 성소수자 차별이 회사에 손해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일정 부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성소수자 정책을 열심히 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며 “그중에서도 차별로 인해 자칫 좋은 인재를 잃어버릴 수 있고, 이는 회사에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성소수자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우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기업이 (성소수자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 차원의 법 개정이 없더라도 기업이 사내 교육과 규정 마련을 통해 성소수자에 관한 이해를 높이고 모두가 존중받는 일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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