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경의 세계로] 재정절벽 회피, 미국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

입력 2012-12-13 11:17 수정 2012-12-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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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이 어린이들의 크리스마스 판타지까지 깨고 있다니….

퍼블릭폴리시폴(PPP)이라는 미국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 이상이 산타클로스가 올해 선물 예산을 감축할 것으로 답했다고 한다. 정치가들의 명분 싸움이 어린이들의 꿈마저 짓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때 우리나라에서는 “옛날 어린이들은 호환·마마·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린이들은 무분별한 불법비디오들을 시청함에 따라…(이하 생략)”라는 공익광고 문구를 따라 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현재를 사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재정절벽이 호환·마마·전쟁보다 무서운 재앙으로 여겨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재정절벽 협상 시한을 3주여 남겨두고 미국 여야 회동이 무위로 끝나면서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재정절벽은 지금까지 누구도 겪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역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진 호환·마마·전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이다.

재정절벽은 언어의 마술사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만든 신조어다. 막연한 수치와 여파들이 세계 경제에 가공할만한 충격을 줄 것이라는 게 우리가 아는 전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재정절벽이 현실화하면 내년에만 3350억 달러(약 360조원)의 세금이 인상되고 재정지출은 1650억 달러가 삭감된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은 3~4%포인트 가량 낮아질 전망이다.

이것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앞으로 10년간 5조 달러의 증세와 2조 달러 이상의 재정지출을 더 삭감해야 한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재정절벽을 둘러싼 여야 협상이 결렬될 경우 전쟁과 맞먹는 혹한과 헐벗음이 서민들을 옥죌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도 미국 위정자들은 의연하다.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크리스마스 이전에 재정절벽 협상이 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지난 주말 타결을 시도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연말 의회 휴회기를 감안하면 연내 타결과 관련법안 처리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은 전쟁의 광기와 지나친 관료주의를 풍자한 조지프 헬러의 소설 ‘캐치-22’와 중첩된다. 캐치-22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 피노사 섬에 주둔하던 미 공군 전투비행단 소속 조셉 요사리안 대위를 둘러싸고 전쟁의 본질과 그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심리를 날카롭게 그린 풍자소설이다. 헬러는 이 작품에서 국가의 명분과 개인의 존엄성 간의 관계를 신랄하게 풍자했다.

현재 미국 정계의 모습도 소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다. 국민의 안녕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명분을 앞세운 당쟁에 여념이 없는 상황 말이다.

열흘 남짓 지나면 크리스마스다. 어린이라면 누구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판타지가 있다. 정치인들의 명분 싸움이 어린이들의 판타지마저 재정절벽으로 밀어 넣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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