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거안사위’의 경고, 162조 미래대응기금은 쌈짓돈이 아니다

입력 2026-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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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선 경제정책부장 (이투데이DB)
▲석유선 경제정책부장 (이투데이DB)
거안사위(居安思危). 편안할 때조차 닥쳐올 위태로움을 먼저 생각하고 경계하라는 옛 가르침이다. 눈앞의 평온이나 일시적 호황에 도취되어 방심하는 순간 파국이 시작된다는 이 서늘한 경고는, 국가 곳간을 책임지는 재정 당국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제1의 철칙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4일 종합정책질의를 시작하면서 2027년도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됐다. 헌법상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 2일까지 남은 시간은 한 달 남짓이다. 이번 예산안의 총지출은 820조9000억원으로, 올해 본예산(727조9000억원)보다 무려 93조원(12.8%) 늘어난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정부는 잠재성장률 반등을 명분으로 지출 증가율을 대폭 끌어올렸고, 반도체 호황에 따른 초과 세수를 밑천 삼아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했다. 그러나 화려한 청사진 이면에는 거안사위의 엄중함 대신 일시적 세수 착시에 기댄 안이한 재정 팽창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이번 예산국회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미래대응기금이다. 정부는 162조3000억원의 기금 중 45조4000억원을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인재 등 4대 분야에 투입하고 12조5000억원을 신규 국채 발행 축소에 쓴 뒤, 나머지 104조4000억원을 여유자금으로 남겨두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기금 관련 법안을 들여다보면 국회 예산 심사를 벗어나는 예외 조항이 지나치게 많다. 총지출의 30%까지 국회 동의 없이 사업비를 변경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넓게 인정해 100조원대 자금이 행정부의 ‘합법적 쌈짓돈’으로 전락할 수 있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게다가 반도체 경기 사이클에 따라 재원 적립이 지속될지 불확실한 기금에 매년 고정비가 드는 경직성 사업들을 대거 얹어놓았다. 한시적 초과 세수가 꺾이면 기금 사업 전체가 재정 절벽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설계다.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미래기금이 정권마다 ‘입맛’에 맞는 사업을 밀어붙이는 수단이 되지 않으려면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수적이다. 재원 조성과 지출 전반에 국회 사전 심의를 엄격히 적용해 통제권을 복원해야 한다. 아울러 매년 지속적인 재정 투입이 요구되는 개별 사업은 미래대응기금에 억지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일반회계 소관 부처가 맡아 책임 있게 운용하도록 재정 구조를 정상화해야 마땅하다.

지금이야말로 빚을 갚아 나라의 재정 체력을 비축해야 할 골든타임이다. 국가채무는 올해 추경 기준 1412조8000억원에서 2030년 1734조1000억원으로 321조원 이상 폭증할 전망이다. 최근 한국은행 총재조차 일시적 호황에 기댄 지출 확대를 경고했고, 과도한 부채로 흔들리는 프랑스의 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21조3000억원 규모의 3대 메가프로젝트와 8배 급증한 신고포상금은 물론 미래기금 적립 여파로 60조원대의 지방·교육재정이 흔들리게 된 점도 다시금 되짚어야 할 난제다.

국회 예결위는 16일 가동되는 예산안 조정 소위원회를 통해 불요불급한 지출을 철저히 덜어내야 한다. 예산안 처리 법정 시한을 지키는 것도 국회의 큰 책무지만, 마감 시간에 쫓겨 막판 비공개 ‘밀실 협의’로 지역구 몫을 나눠 먹던 구태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미래를 대비한다는 거창한 구호를 혈세의 비효율적 배분을 가리는 면죄부로 삼아선 안된다. 호황의 국면에서 절제를 배우지 못하면 불황의 한복판에서 감당해야 할 고통은 온전히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게 된다. 미래대응기금의 자의적 운용 여지를 차단하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바로 세우는 일, 그것이 바로 헌법이 국회에 예산 심의권을 부여한 본래의 이유이자 ‘거안사위’의 준엄한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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