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를 둘러싸고 대만에서는 논쟁이 뜨겁다. 야당 국민당은 자신들이 1만 대만달러 지급을 제안했을 때 미온적이던 라이 정부가 11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입장을 바꿨다고 공격했다. 국민당에서는 아예 2만 대만달러로 늘리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치권에서 현금 지급 경쟁이 시작되면 논쟁의 초점이 ‘왜 주느냐’에서 ‘얼마나 더 주느냐’로 옮겨가기 쉽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런 가운데 대만의 대표 경제 싱크탱크 중화경제연구원(CIER)은 한국의 ‘미래대응기금’에 주목했다. 한국 정부는 최근 AI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분을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162조3000억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하기로 했다. 청년과 인재 육성, 지역 발전, AI와 반도체 등에 투자해 경기 호황이 안겨준 일시적 세입을 장기적인 성장 능력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CIER의 류다니엔 지역개발연구센터 소장은 최근 한국 정부의 미래대응기금 신설을 소개하며 “대만이 한국의 접근 방식에서 배울 귀중한 교훈이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보편적 현금 지급은 AI 산업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소비 지출을 촉진할 수 있지만 이러한 지급 방식은 주로 소득 분배 문제를 다루는 데 그치고 생산성 격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면서 “이에 비해 한국은 추가 재정 자원을 인재, AI, 지역 개발에 투자하는 계획을 통해 장기적인 역량 구축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AI 배당 정책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만처럼 AI 붐으로 인한 반도체 특수를 누리는 대표 국가인 한국도 초기에는 초과 세수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직접 배당하는 ‘국민배당금제’가 공론화되기도 했다. 하지만 거센 논란이 일었고 기금 조성으로 가닥이 잡혔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국과 대만의 선택이 교차한다. AI·반도체 호황이라는 비슷한 행운을 만났고 특정 산업에 대한 편중이 심하다는 공통 문제를 갖고 있지만, 대만은 당장의 과실을 국민에게 직접 나누는 데 무게를 뒀다. 반면 한국은 늘어난 세수의 상당 부분을 미래 투자와 재정 안전판으로 남기는 쪽을 택했다. 갑자기 생긴 재정 여력을 어떻게 쓰느냐에 한 나라의 경제 철학과 미래에 대한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그렇다고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이름만 붙이면 미래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막대한 재원이 정치권의 쌈짓돈이나 선심성 사업의 우회로가 되지 않도록 투자 대상과 성과를 엄격히 따지고 국회와 사회가 감시해야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다.
AI 시대에 국가가 국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배당은 몇십만 원의 현금 아니다. 오늘 생긴 횡재를 내일도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으로 바꾸는 것. 호황의 과실을 소비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다음 호황을 만들어낼 씨앗으로 남기는 것. 그것이 대만의 싱크탱크가 한국에서 발견한 ‘진짜 AI 배당’의 의미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