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조 터졌는데 주가는 '반토막⋯AI·반도체가 삼킨 'K바이오' 생존 조건

입력 2026-09-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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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조 기술수출에도 기업 주가는 ‘반토막’
타 성장 산업에 수급 쏠려 앞선 조정과 달라
반등 조건은 수급 회복‧구체적 성과‧정책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어느 때보다 굵직한 성과를 냈다. 알테오젠과 한미약품, 오스코텍 등을 중심으로 약 21조원 규모의 기술수출이 이뤄졌고 주요 기업들은 글로벌 학회에서 임상 성과를 발표하며 빅파마와의 협력도 확대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이전과 다르다. 기술수출과 임상 성과가 이어졌음에도 주가는 하락했고 과거처럼 대형 계약이 곧바로 기업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공식도 힘을 잃었다.

그동안 기술수출 계약 규모 자체가 기업 가치를 평가하는 핵심이었다면 이제는 선급금 규모와 상업화 가능성 등 계약의 질을 더 중요하게 보는 분위기다. 여기에 반도체와 AI 등 다른 성장 산업으로 투자금이 이동하면서 업계에서는 이번 조정이 과거 바이오 침체기와는 다른 성격이라고 평가한다.

기술수출 늘었지만 시장은 냉담

14일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9월 2일까지 공개된 국내 기업의 기술수출 규모는 약 21조7000억원이다.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지난해 연간 기술수출 규모인 약 27조6000억원의 80%에 해당한다.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임상 데이터 발표, 인수합병(M&A) 등의 호재도 있었다.

그러나 주가는 부진하다. 올해 상반기 주요 국가별 MSCI 헬스케어 지수 수익률을 보면 한국은 -14%로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부진했다. 코스닥 제약지수 역시 약 20% 하락하며 코스닥지수(-1%)보다 낙폭이 훨씬 컸다. 반면 미국 나스닥 바이오테크놀로지지수(NBI)는 15% 상승해 같은 기간 나스닥지수(13%)를 웃돌았다.

과거에는 조 단위 기술수출이나 글로벌 빅파마와의 계약이 나오면 해당 기업의 주가는 크게 뛰었고 상한가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올해는 조 단위 기술수출이 발표돼도 주가 상승세가 이어지지 않거나 오히려 하락하는 사례가 반복됐다.

한 바이오 기업 IR 담당자는 “과거에는 초기 임상 단계 기술수출의 상당수가 계약금 수령 이후 후속 마일스톤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기술이 반환되면서 시장에 학습효과가 생겼다”며 “투자자들은 전체 계약 규모보다 실제 확보하는 선급금 규모를 더 중요하게 보고 계약도 이전보다 보수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는 투자자들의 평가 기준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시장은 기술수출 계약 자체보다 이후 임상 개발과 허가, 상업화까지 이어질 가능성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 기술수출 발표만으로 기업 가치가 재평가되던 시대에서 벗어나 실제 성과를 입증할 수 있는 기업에 높은 평가를 내리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정윤택 제약산업전략연구원장은 “현재 시장은 기술수출 공시가 나와도 과거처럼 무조건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그동안 여러 실패 사례를 겪으며 학습효과가 축적돼 계약 규모보다 계약의 질과 상업화 가능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여기에 반도체 등 기술주로의 자금 쏠림과 강화된 코스닥 상장 유지 기준도 바이오 업종의 부담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오 조정, 이번에는 무엇이 달랐나

이번 조정의 가장 큰 특징은 산업 성과와 주가가 반대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전 조정이 대형 임상 실패나 기술수출 감소 등 산업 자체의 악재에 영향을 받았다면 이번에는 기술수출이 확대됐음에도 투자심리 위축과 AI·반도체 등 다른 성장 산업으로의 자금 이동이 맞물리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규모는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2024년 이후에는 대형 기술수출 계약이 잇따르며 누적 기술수출 금액이 가파르게 늘었다. 하지만 코스닥 제약 지수는 기술수출 확대와 별개로 여러 차례 큰 폭의 조정을 반복했다.

첫 번째 상승기인 2015~2016년에는 한미약품 기술수출,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등의 영향으로 제약지수가 상승했다. 이후 약 2개월 동안 29%, 이어 6개월 동안 22% 조정을 받았다. 2018~2020년에는 다수의 임상 3상 실패가 이어지며 약 1년 7개월 동안 54% 하락하는 조정이 나타났다. 2021~2023년에는 코로나19 특수 이후 금리 인상과 기술수출 부재 등이 겹치면서 약 1년 11개월 동안 52% 하락했다.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그래픽=김소영 기자 sue@)

하지만 2025~2026년의 흐름은 이전과 달랐다. 기술수출은 오히려 증가했고 글로벌 빅파마와의 계약도 이어졌지만 올해 코스닥 제약지수는 3월 고점 대비 약 5개월 만에 50% 이상 급락했다. 산업 경쟁력이 약화 됐다기보다 AI·반도체 등 다른 성장 산업으로 투자자금이 이동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또 알테오젠의 로열티 논란과 삼천당제약의 불성실 공시, HLB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 불발, 코오롱티슈진의 임상 3상 실패 등 개별 기업의 악재도 바이오 업종 전반의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주요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도 반토막이 났다. 올해 기준 알테오젠은 51만8000원(1월16일)에서 26만8000원(7월22일)까지 떨어졌고, 리가켐바이오는 21만3500원(3월25·27일)에서 7만7900원(7월30일), 에이비엘바이오는 24만5500원(1월29일)에서 6만800원(7월30일)까지 하락했다. 불과 6개월 만에 주요 기업들의 시가총액이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이번 조정은 가장 큰 폭의 조정이며 짧은 기간에 이렇게 하락한 사례는 처음이다. 가장 큰 차이는 수급 쏠림 현상이다. 레버리지 확대와 함께 AI, 반도체 등의 산업으로 수급이 이동했다”며 “기술수출이나 임상 성과 같은 호재가 이어졌음에도 주가가 오르면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다른 섹터로 자금이 이동했다. 여기에 일부 기업들의 악재까지 겹치면서 바이오 업종이 안팎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바닥인가 아닌가…반등하기 위한 조건은

그렇다면 바이오 주가는 언제 반등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특정 시점보다 반등을 이끌 조건이 먼저 충족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도체와 AI에 집중된 투자자금이 성장주 전반으로 분산되고 기술수출과 임상 성과가 다시 기업 가치 상승으로 연결되는 흐름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후기 임상 성공과 FDA 허가, 상업화 성과가 이어지는 것도 시장 신뢰 회복의 조건이다.

이 바이오 기업 IR 담당자는 “이미 기술수출을 완료한 기업들이 실제 대규모 로열티 수입을 확보해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사례가 나와야 투자심리도 회복될 수 있다”며 “단기적인 기대감이 아니라 실질적인 매출과 이익으로 이어지는 성공 사례가 축적돼야 한다. 또 상장 유지 기준이 강화된 만큼 기업들도 연구개발뿐 아니라 실적과 재무구조 등 펀더멘털을 함께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바이오 업종의 추세적인 반등을 위해서는 반도체 조정에 따른 바이오 업종의 상대적 강세, 악재에 대한 시장 민감도 완화, 기술수출과 임상 데이터 발표에 대한 주가 반응 회복, 코스닥 성장주의 순환매 재개 등이 함께 나타나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술과 임상 데이터,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 성과가 지속적으로 확인된다면 반등 흐름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조정은 바이오산업 자체에 대한 의구심이라기보다 대외적인 상황과 투자자들의 평가 기준이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에는 기술수출 계약 자체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면 이제는 계약 이후 임상 개발과 허가, 상업화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평가하는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정 원장은 “이제는 계약 규모보다 파트너사의 개발 의지를 보여주는 높은 선급금과 후기 임상 단계 후보물질, 글로벌 시장 수요에 맞는 플랫폼 기술이 더 중요하다”며 “기술수출 이후 실제 마일스톤과 로열티가 실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축적돼야 시장의 신뢰도 회복될 수 있다. 여기에 바이오 산업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지원도 함께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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