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시장 집어삼킨 'HBM 블랙홀'⋯CXMT가 만든 ‘추격의 역설’

입력 2026-09-1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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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XMT 2027년 말 월 36만장 생산능력 전망
HBM 비중 늘수록 범용 D램 생산 여력 감소
中 AI 가속기 성장도 HBM 수요 자극…국산화는 시간 필요
중장기 수율 개선·장비 자립이 변수

▲창신메모리(CXMT) 로고 뒤로 중국 오성홍기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창신메모리(CXMT) 로고 뒤로 중국 오성홍기가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추격이 거세질수록 글로벌 D램(DRAM) 공급 부족이 오히려 길어지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지만 고대역폭메모리(HBM) 진입을 서두르면서 범용 D램에 투입할 실질 생산능력은 예상만큼 늘어나지 않을 수 있어서다.

중국의 AI 가속기 국산화도 HBM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중국이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공급자인 동시에 거대한 수요자로 부상하는 셈이다. 중국의 증설을 곧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과잉 위험으로 연결해온 기존 셈법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수정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중국의 위협이 약해졌다고 보기는 이르다. CXMT의 생산능력 확대는 현재진행형이고 범용 D램에서는 기술 격차도 빠르게 좁히고 있다. 향후 HBM 수율 개선과 중국산 반도체 장비 자립이 맞물리면 지금까지 구축한 대규모 생산능력이 한국 업체에 직접적인 공급 압력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월 36만장 늘려도…HBM이 캐파 잠식

CXMT의 성장 속도는 가파르다. 업계는 CXMT가 2027년 말 월 36만장 수준의 D램 웨이퍼 생산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정책을 등에 업고 범용 D램뿐 아니라 HBM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숫자만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공급과잉 신호다. 메모리 산업은 대규모 증설 이후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면서 가격이 급락하는 사이클을 반복해왔다. 중국 업체의 증설이 액정표시장치(LCD)와 태양광 등에서 공급과잉으로 이어진 전례도 있다.

이번에는 HBM이라는 변수가 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 다이를 수직으로 쌓는 구조여서 범용 D램보다 많은 생산능력을 소모한다. CXMT가 HBM 생산 비중을 높일수록 명목상의 웨이퍼 생산능력과 실제 범용 D램 공급능력 사이의 격차가 커진다.

미래에셋증권은 CXMT가 2027년 말까지 전체 생산능력의 약 10%를 HBM에 할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HBM은 범용 D램 대비 생산능력 전환비율이 4배에 가까워 캐파 잠식 효과가 큰 것으로 추정했다.

미래에셋증권은 “HBM 생산 비중이 커질수록 컨벤셔널 대비 전환비율이 4배에 가까워 캐파 잠식이 클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질적인 캐파는 2025년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중국의 생산시설 증설 규모만으로 향후 D램 공급량을 판단하기 어려워졌다. 웨이퍼 투입량이 늘더라도 HBM 비중이 함께 상승하면 범용 D램 시장에 추가되는 실제 공급량은 제한될 수 있다.

▲중국 베이징시에 위치한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CXMT) 생산공장 모습. (AFP연합뉴스·그래픽=김재영 기자 maccam@)
▲중국 베이징시에 위치한 창신 메모리 테크놀로지(CXMT) 생산공장 모습. (AFP연합뉴스·그래픽=김재영 기자 maccam@)

中 AI 굴기…메모리 ‘수요자’로 부상

중국 AI 산업의 성장도 메모리 수급 방정식을 바꾸고 있다. 중국 AI 반도체 수요가 정부 주도 사업에서 클라우드서비스사업자(CSP)와 AI 모델 업체 중심의 실수요로 이동하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는 중국산 AI 가속기 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중국 CSP들이 추가 규제 가능성에 대비해 자국산 가속기 확보에 나서면서다.

가속기 국산화는 HBM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 중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무어스레드(Moore Threads)는 기존 세대까지 GDDR을 사용했지만 향후 제품부터 HBM을 도입할 예정이다.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조달할 자금의 사용처에도 연구개발과 HBM 등 고가 부품 공급망 확충을 포함했다.

또 다른 중국 GPU 기업 비런테크(Biren Tech)는 HBM 가격 변동을 향후 매출총이익률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일루바타(Iluvatar CoreX)는 삼성전자 HBM2E(3세대)를 사용하고 있으며 HBM3(4세대)급 중국산 제품도 차기 필요 부품으로 꼽았다.

중국 AI 가속기 산업이 커질수록 CXMT가 확보한 생산능력 가운데 HBM으로 돌려야 할 물량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D램 공급을 늘리는 동시에 HBM 수요도 끌어올리는 구조다.

“HBM 양산 임박”에도…상용화는 시간 필요

관건은 중국이 HBM을 얼마나 빨리 국산화하느냐다. CXMT가 HBM3 양산을 추진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실제 수요업체들은 보다 보수적인 시간표를 제시하고 있다.

비런테크는 중국 HBM 업체들이 공급 준비를 갖추는 데 약 2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루바타는 CXMT의 LPDDR을 이미 저사양 제품에 채택하고 있지만 HBM은 2027년 이후 검토할 예정이다. 시장의 ‘양산 임박’ 기대와 실제 칩메이커들이 체감하는 상용화 시점에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HBM은 D램 칩 생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여러 개의 다이를 쌓는 적층 기술과 실리콘관통전극(TSV), 첨단 패키징이 필요하다. AI 가속기와의 호환성과 수율, 발열, 전력효율을 확보한 뒤 고객 인증을 거쳐 안정적인 대량 공급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CXMT가 HBM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글로벌 선두 업체와 본격적으로 경쟁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이유다.

장비 자립도 20~30%…추격 속도 변수

반도체 장비도 중국의 HBM 추격 속도를 좌우할 변수다. 중국 반도체 식각 장비업체 AMEC이 평가한 중국의 전체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20~30%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높은 식각 분야는 약 40% 수준이다. 중국 업체들이 식각과 증착부터 하이브리드 본딩까지 국산 장비 영역을 넓히고 있지만 핵심 부품과 노광은 여전히 약점이다.

장비를 제조하는 것과 실제 생산라인에 안정적으로 적용하는 것 사이에도 격차가 있다. AMEC의 공급망은 수천 개 부품과 약 1000개 협력사로 구성돼 있다. 부품 국산화율은 제조 가능 여부를 기준으로 70~80%에 달하지만 실제 채택 기준으로는 40~50% 수준으로 조사됐다.

노광 장비는 더 큰 장벽이다. 중국은 심자외선(DUV) 다중 패터닝과 첨단 패키징으로 선단공정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지만 생산성과 원가, 수율을 글로벌 선두 업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CXMT가 생산시설을 빠르게 늘려도 선단 D램과 HBM 수율이 충분히 올라오지 않으면 명목상의 캐파가 실제 비트 공급량으로 전환되는 속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27일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공장에 회사 로고가 세워져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27일 중국 베이징 외곽에 있는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공장에 회사 로고가 세워져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中 증설=공급과잉’ 공식 흔들

이에 따라 중국발 메모리 공급과잉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HBM에 생산능력을 집중하면서 범용 D램 공급 여력이 제한된 가운데 중국 역시 AI 가속기와 HBM 국산화에 상당한 생산능력을 투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확보한 생산능력이 곧바로 글로벌 시장에 공급되기보다 자국 AI 생태계의 수요를 충족하는 데 상당 부분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수급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과거에는 중국 업체의 증설이 한국 업체의 공급을 대체하는 제로섬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구조가 달라졌다. 글로벌 업체들이 고부가 HBM으로 생산능력을 이동시키며 생긴 범용 D램의 빈 공간을 CXMT가 채우는 동시에 중국 역시 HBM으로 생산능력을 옮기고 있다. ‘CXMT 증설→D램 공급 급증→가격 하락’이라는 기존 공식만으로 다음 메모리 사이클을 설명하기 어려워진 이유다.

진짜 위험은 ‘유효 캐파’ 살아날 때

중국 메모리의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생산시설 규모보다 확보한 생산능력을 언제부터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다.

현재 CXMT는 HBM 생산을 확대할수록 범용 D램 생산능력을 희생해야 한다. HBM 수율과 생산효율이 글로벌 업체보다 낮다면 같은 양을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은 캐파를 투입해야 한다. 중국의 D램 공급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이다.

반대로 HBM 수율이 올라가고 중국산 식각·증착·검사 장비와 핵심 부품의 국산화가 진전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까지 구축한 명목 생산능력이 실제 공급능력으로 빠르게 전환될 수 있다. AI 가속기부터 파운드리, 메모리, 장비, 첨단 패키징까지 중국의 반도체 생태계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르다.

현재의 수급만 놓고 중국의 위협이 약해졌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위협이 사라졌다기보다 글로벌 공급 경쟁으로 본격화하는 시점이 뒤로 밀리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당장은 중국의 AI 굴기가 D램 공급 부족을 연장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우호적인 수급 환경을 만들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CXMT는 생산능력과 기술을 동시에 축적하고 있다.

한국 메모리 산업이 확보한 시간은 중국의 추격이 멈춘 시간이 아니다. 중국이 다음 단계로 올라서기 위해 막대한 생산능력을 자국 AI 생태계 안에서 소모하고 있는 시간에 가깝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확보한 시간도 무한하지 않다”며 “중국이 범용 D램을 따라오는 동안 HBM4(6세대)와 차세대 HBM, 선단 D램에서 기술 격차를 다시 벌려야 한다. 동시에 범용 제품에서 CXMT가 가격 결정력을 확대하는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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