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영상통화 거부한 명의도용범에 ‘1원 인증’ 대출…法 “은행, 주의 부족” [1원 인증의 배신①]

입력 2026-09-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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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6-09-08 17:0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이투데이DB)
▲서울중앙지법 (이투데이DB)

영상통화 본인인증을 거부한 명의도용자에게 보안강도가 더 낮은 ‘1원 인증’을 거쳐 대출을 실행한 은행이 본인확인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이에 따라 명의도용 피해자가 해당 은행에 수천만원의 대출금을 갚을 책임도 없다고 봤다.

은행이 통상적인 비대면 본인확인 절차를 거쳤는데도 대출 효력이 부정된 이례적 판결이다. 법원은 명의도용 의심 정황이 있었다면 정해진 절차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도용 여부를 주의 깊게 확인했어야 한다고 봤다.

8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민사26단독 김효정 판사는 최근 박모 씨가 A 은행과 B 캐피탈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박 씨가 두 회사에서 자신 명의로 실행된 총 6800만원의 대출채무를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박 씨는 2022년 8월 아들과 교제하던 여성에게 주민등록증을 도난당했다. 이 여성은 지인과 함께 박 씨 명의 휴대전화를 개통하고 은행 계좌와 인증서를 만든 뒤 A 은행에서 5100만원, B 캐피탈에서 1700만원 등 총 6800만원을 대출받았다.

박 씨는 자신의 명의가 도용돼 체결된 대출약정은 무효라며 소송을 냈다. 자신에게 대출금을 갚을 의무가 없다는 취지다.

A 은행은 박 씨에게 대출금을 갚을 의무가 있다고 맞섰다. 공인된 기관이 발급한 전자서명 인증서로 본인확인을 해 대출 신청자를 박 씨로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과거 대법원도 공인인증서를 통한 본인확인의 효력을 인정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다.

또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의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에 따라 신분증 사본 제출과 1원 인증, 전자서명 인증 등을 거친 만큼 대출 실행에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입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입구.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재판부는 박 씨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2020년 법 개정으로 공인인증서 제도가 폐지되고 전자서명수단이 국가 위주의 공인인증서에서 민간 위주의 다양한 전자서명수단으로 변경됐다”며 “기존 대법원 판결 법리는 개정 전자서명법이 적용되는 사안에는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은행연합회와 금융투자협회가 마련한 비대면 실명확인 방안 역시 금융회사가 준수해야 할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최신 기술 수준 등을 고려해 명의도용 여부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는지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명의도용범들이 영상통화 본인인증에 응하지 않았는데도 A 은행이 영상통화보다 보안강도가 낮은 1원 인증 방식으로 본인확인을 진행한 점을 문제 삼았다. 재판부는 “영상통화를 이용한 본인인증이 거부됐다면 적어도 그와 같은 수준의 실명확인을 다시 거쳤어야 함에도 보안강도가 낮은 1원 인증 방식으로 본인인증을 했다”고 지적했다.

대출 직후 이뤄진 전화통화도 은행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고 본 근거가 됐다. 박 씨는 60대였지만 명의도용자들은 30~40대였다. 재판부는 “직원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통화 상대방의 목소리가 60대인 박 씨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B 캐피탈도 신분증 진위 확인과 휴대전화 인증만으로는 비대면 실명확인 절차를 제대로 거쳤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B 캐피탈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이 확정됐으며, A 은행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A 은행은 항소 중인 사안이라며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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