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월 흑해 분쟁 격화…9월 물량 더 적어질 듯

각종 가공식품에 쓰이는 전분·전분당 원료인 비유전자변형(논GM) 옥수수의 8월 수입량이 한 달새 70% 가까이 급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최근 흑해를 오가는 곡물선 피격이 잇따르면서 논GM 옥수수 수급에도 비상등이 켜진 것이다.
국내 주요 전분·전분당업체 재고는 2~3개월 수준으로 파악된다. 올해 계약물량 78%가 국내에 들어온 만큼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흑해 곡물길이 계속 막힌다면 내년부터 논GM 옥수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관련 식품의 원가 부담이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국내에 수입된 논GM 옥수수는 5만2450t(톤)으로 전월(16만1711t) 대비 67.6% 급감했다.
구체적으로 1월 9만143t, 2월 9만9076t, 3월 10만8067t에서 4월 14만8696t으로 늘었다가 5월에는 7만8267t으로 줄었다. 이후 6월 18만7439t, 7월 16만1711t으로 늘어난 뒤 지난달 5만t대로 급락했다.
다만 당장 국내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정부와 업계의 판단이다. 대상·사조CPK·삼양·CJ제일제당 등 국내 주요 전분·전분당업체가 확보한 논GM 옥수수 재고는 평소 사용량 기준 2~3개월치로 파악된다. 올해 계약 물량의 78%도 국내에 들어왔다.
전분당협회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우크라산 논GM 옥수수를 실은 배가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도 "현재 (각사에) 2~3개월분 재고가 있어 당장 수급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우회로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흑해의 물류 차질 장기화에 따른 내년 사용 물량 확보다. 무엇보다 논GM 옥수수는 정부 비축 대상이 아니다. 이로 인해 민간업체가 원료 수요와 국제가격 및 재고 상황 등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수입하고, 정부가 별도 연간 수입계획을 수립·관리하지 않는다. 특히 가공용 논GM 옥수수는 국내 수요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 핵심 수입국인 우크라 등의 생산·수출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크라는 세계 옥수수 수출량의 약 11%를 차지하는 주요 공급국이다. 이 수치는 GM 여부를 구분하지 않았다. 우크라는 공식적으로 GM 옥수수의 상업적 재배가 허용되지 않아 한국을 비롯한 논GM 옥수수의 주요 공급처 역할을 해왔다.
최근 흑해 상황이 2022년 러우 전쟁 발발 이후 지속된 공급망 불안과 양상이 다른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우크라는 2022년 7월 유엔과 튀르키예의 중재로 체결된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곡물을 수출했고, 러시아가 이듬해 협정에서 탈퇴한 이후 독자적인 해상 통로를 구축해 수출을 이어왔다. 전쟁 중에도 흑해 곡물 수출라인 자체는 유지한 셈이다.
하지만 최근 우크라 곡물 수출항뿐 아니라 이를 운송하는 민간 상선까지 공격에 노출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흑해 곡물 운반선 등에 대한 러시아의 대(對)우크라 포격이 본격화한 것은 7월 중하순부터다. 이후 출항했어야 할 곡물 선적이 지연됐다면 그 영향은 8월보다 9월부터 뚜렷하게 나타날 공산이 크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이 즈음부터 오데사·초로노모르스크 등 우크라 주요 수출 거점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강화했다.
실제 7월 19일에는 옥수수를 실은 화물선 '골든 레오'가 오데사 인근에서 러시아 미사일 공격을 받아 선원 등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달 6일에도 흑해에서 밀을 실은 외국 선박이 러시아 공격을 받아 관련 선원이 사망했다고 우크라 정부가 밝힌 바 있다.
이후 우크라는 철도·도로 등을 통한 우회 수출을 확대하고 있지만 대체 수송로를 통한 물량 소화는 기존 흑해항 대비 절반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내 수급까지 ‘40일의 시차’가 존재한다는 점도 변수다. 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에서 곡물을 선적·출항하면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통상 35~40일 걸린다. 7·8월 국내에 들어온 우크라 옥수수 상당량은 최근 흑해 상황이 악화하기 전 출항한 물량인 셈이다. 때문에 7월 중하순 이후 항만·상선 공격에 따른 운송 차질이 지속됐다면 그 영향은 9월 이후 국내 실적에 보다 뚜렷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대체 물량을 단기간에 확보하기도 쉽지 않다. 논GM 옥수수는 유전자변형 여부, 혼입 기준 등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옥수수 자체도 공산품처럼 공급 부족에 맞춰 생산량을 즉각 늘리기 어렵다. 우크라에서는 옥수수를 통상 봄에 파종해 가을 수확하는 만큼 특정 시기에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단기 증산으로 메우는 데 한계가 있다.
4대 전분당 업체에 재직 중인 한 관계자는 "11월까지는 재고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우크라산을 주로 가져오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추가 선적 등 논GM 옥수수가 확보된 것이 있다 보니 당장 수급 이슈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미 논GM 옥수수 계약물량 78%가 들어와 있어 당장 문제가 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며 "해상이 안 되면 육로 등 다른 길로 우회하는 방안도 있지만 거기까지는 안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논GM 옥수수 수입에 실제 차질이 발생하면 국내 영향도 불가피하다. 논GM 옥수수로 만든 전분과 물엿 등 전분당은 과자·라면·액상과당·맥주 등 다양한 식품 원료로 사용된다. 현재는 원료와 제품 재고가 확보돼 있어 단기에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하지만 관련 원료 부족, 우회 수송이 장기화하면 식품업체 원가 부담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서 의원은 "국민의 일상 먹거리와 밀접한 논GM 옥수수 수급이 국제정세에 따라 흔들리는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면서 "안정적인 논GM 옥수수 물량 확보와 공급선 다변화는 물론, 비상 상황에 대비한 대책을 포함해 선제적인 수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