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북항에 두 개의 거대한 축이 들어선다.
해양수산부 신청사가 북항 1단계 재개발구역에 들어서고, 국적선사이자, 글로벌 선사인 HMM도 부산 이전을 확정해 북항에 새 본사를 짓는다. 정부의 해양정책 기능과 글로벌 해운기업의 본사가 한 공간에 모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북항의 미래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HMM의 부산 이전을 하나의 기업 이전으로 끝낼 것인가, 부산 해양산업 전체를 다시 짜는 계기로 만들 것인가.
전재수 부산시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수산기업들도 충분히 해양수도에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과 관심을 가지겠다”고 말했다. 해운에 수산을 더하겠다는 의미다.
부산에는 이미 수산 클러스터의 씨앗이 있다.
부산공동어시장과 자갈치시장이 있고 서구를 중심으로 수산물 냉동·냉장과 가공·유통 기반이 형성돼 있다. 생산·집산·경매·유통·보관·가공·수출까지 수산산업의 밑바탕을 갖춘 도시다.
하지만 지금까지 해운과 수산은 각각 움직였다.
북항재개발은 이 둘을 연결할 기회다. 북항을 해운기업만 모이는 업무지구가 아니라 해운과 수산, 금융과 물류, IT가 연결되는 해양산업 플랫폼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도시가 노르웨이 베르겐이다.
베르겐에는 세계적인 연어 양식기업 Mowi를 비롯해 레뢰이 시푸드 그룹, 그리그 시푸드 등 글로벌 수산기업들이 본사를 두고 있다.
출발은 어시장이었다.
레뢰이는 1899년 베르겐 어시장에서 생선을 팔던 어부에서 시작했다. 어시장의 수산 거래가 기업으로 성장했고, 다시 베르겐에 본사를 두면서 항만·수산·금융·물류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했다.
작은 어시장이 세계 수산기업을 품는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부산과 베르겐은 닮았다. 항구가 있고 어시장이 있으며 수산 거래의 역사가 있다.
하지만 부산에는 더 강한 자산이 있다. 세계적인 항만과 공동어시장, 자갈치, 수산물 냉동·냉장 기반이 한 도시에 있다. 여기에 북항이라는 새로운 업무·도시공간까지 확보했다.
해운과 수산을 동시에 가진 항구도시라는 점이 부산의 차별점이다.
수산에 IT를 붙이면 산업이 달라진다.북항에 수산기업을 유치한다고 수산업체 사무실만 옮겨서는 안 된다.
글로벌 수산물 무역·가공·유통기업과 냉동·냉장 물류기업, 해양수산금융·보험기업 등이 모여야 한다.
여기에 AI와 데이터가 결합하면 수산물 가격 예측, 글로벌 거래 플랫폼, 이력관리, 스마트 콜드체인, 항만·수산물류 최적화 등 새로운 산업을 만들 수 있다.
부산항의 물류 데이터와 수산물 거래 데이터가 연결되면 기존 수산업의 경쟁력을 넘어 새로운 해양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북항이 오피스 빌딩 숲에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업들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만으로 클러스터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서로 거래하고 데이터를 공유하며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구조가 필요하다.
북항에는 해양산업의 정책과 기업을 대표하는 두 축이 생긴다.
해수부가 정책을 만들고 HMM이 글로벌 해운시장에서 사업을 펼친다면 그 사이를 산업으로 채워야 한다.
해운·물류 위에 수산기업이 모이고 금융·보험·법률이 자본과 전문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 IT와 AI가 이를 연결하고 대학과 연구기관이 인재와 기술을 뒷받침하는 구조다.
이것이 진짜 클러스터다.
마르세유 유로메디테라네의 교훈도 같다. 기업을 모아놓는다고 산업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공공이 먼저 도시의 판을 만들고 기업이 들어올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기업이 들어오면 서비스 산업과 일자리가 따라붙는다.
베르겐이 어시장에서 출발해 세계 수산산업의 중심으로 성장하는 데 100년이 걸렸고, 마르세유가 유로메디테라네를 통해 도시의 판을 바꾸는 데 30년이 걸렸다.
도시가 판을 만들고 산업이 그 위에서 성장하는 순서를 건너뛸 방법은 없다.
부산이 겨뤄야 할 곳은 서울이 아니다
부산의 경쟁 무대는 서울이 아니다. 싱가포르·상하이·홍콩·오사카 등 아시아의 해양도시다.
싱가포르가 해운과 금융을 결합해 글로벌 해양허브로 성장했다면 부산은 해운과 수산을 함께 가진 강점을 활용해야 한다.
세계적인 항만을 기반으로 해운기업을 모으고 공동어시장과 자갈치를 기반으로 수산기업을 연결해야 한다. 북항 업무지구에는 해양금융·보험·IT 기업을 집적할 수 있다.
베르겐이 작은 항구도시에서 세계 수산기업을 품는 도시로 성장했듯 부산도 해운과 수산을 함께 가진 아시아 해양허브를 만들 수 있다.
북항재개발의 성적표는 빌딩 숫자가 아니다.
해운기업과 수산기업이 거래하는가. 수산기업과 IT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가. 금융기관이 해양산업에 자금을 공급하는가. 대학이 기업에 인재를 공급하는가. 외국 기업들이 부산을 찾아오는가.
이것이 북항의 진짜 성적표다.
HMM이 북항에 닻을 내리면 해운기업이 따라와야 한다. 수산기업도 모여야 한다. 금융·보험·법률·물류기업이 연결되고 IT기업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HMM 하나가 아니라 해양산업 생태계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
1탄에서 확인했듯 CMA CGM은 마르세유 도시재생의 출발점이 아니었다. 도시가 먼저 판을 깔았고 기업이 닻을 내렸다.
베르겐은 어시장에서 시작해 세계 수산기업의 도시가 됐다.
이제 부산에, HMM이 북항에 닻을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그 닻에 무엇을 매달 것인가.
마르세유는 30년에 걸쳐 그 답을 만들었다. 베르겐은 100년에 걸쳐 증명했다.
부산은 이제 그 답을 만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