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 8 몰릴수록 더 멀어진다: 슈퍼리치들이 월드컵을 즐기는 법 [THE RARE]

입력 2026-06-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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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RARE ] VOL. 8

몰릴수록 더 멀어진다:
슈퍼리치들이 월드컵을 즐기는 법

"천외천(天外天). 하늘 밖의 하늘이 있다."

부자 중에서도 '슈퍼리치'라 불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명품관의 오픈런 줄에는 그들이 없습니다. 세상의 0.0001%로 살아가는 그들, '천외천'의 삶은 우리의 상식 밖 궤도에서 움직입니다.

로고가 없는 3000만원짜리 코트, 대중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1억원의 침대, 그리고 지도에서 지워진 리조트. 남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는 '과시'가 아니라, 남들은 결코 알 수 없는 '단절'을 사는 그들의 진짜 속내는 무엇일까요.

이투데이 [THE RARE]는 일반인들은 접하기도 힘든,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 훔쳐보고 싶은 견고한 성벽 안쪽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고가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것은 무엇인지, 그들이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지. 자본주의 최정점에 선 그들의 소비와 취향, 그 속에 숨겨진 부의 트렌드를 들여다 봅니다.

상위 0.0001%가 사는 세상의 문을 열다

VOL. 8 월드컵

▲한 가족이 월드컵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AI 생성)
▲한 가족이 월드컵을 시청하고 있다. (사진=AI 생성)

월드컵이 시작되면 한국은 또 한 번 붉게 물듭니다.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는 빨간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어깨를 걸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집과 호프집에서는 치킨과 맥주를 앞에 두고 다 같이 화면을 노려봅니다. 월드컵 경기 상당수가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중계되니, 알람을 맞춰 두고 졸린 눈을 비비며 골을 기다리는 사람도 한둘이 아닙니다.

오늘(12일) 멕시코시티의 아스테카 스타디움에 불이 켜졌습니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함성 속에서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첫 킥오프를 알렸고, 한 달 넘게 이어질 지구촌 최대 축제의 막이 올랐습니다. 오늘부터 세계 곳곳의 시계는 월드컵의 시간으로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월드컵은 4년을 기다려온 축제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벽잠을 포기하게 만드는 특별한 한 달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모르는 사람과도 자연스럽게 같은 편이 되는 드문 경험입니다.

한국 대표팀은 오늘 조별리그 첫 상대인 체코와의 경기를 승리로 마쳤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경기를 기다리고, 같은 순간에 환호하며, 같은 결과에 웃었겠죠.

이번 북중미 월드컵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치러집니다. 48개국이 참가해 104경기를 소화하고,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의 16개 경기장에서 39일 동안 승부를 펼칩니다. 경기 수만 해도 카타르 대회보다 40경기 늘었습니다. 수십억 명이 지켜볼 세계 최대 스포츠 이벤트인 만큼, 이를 즐기는 방식 역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해질 전망입니다.

어떤 이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으로 경기를 보고, 어떤 이는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 경기장 관중석에 앉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이들은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아예 다른 차원에서 즐깁니다.

월드컵이라는 상품

월드컵은 전 세계가 함께 즐기는 축제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시장이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거둘 수익은 130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며, 이는 역대 가장 돈이 많이 도는 스포츠 행사입니다.

시장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상품을 팔지 않습니다.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수록 더 좋은 좌석, 더 빠른 이동, 더 편안한 휴식, 더 독점적인 경험이 제공됩니다. 항공사에는 퍼스트 클래스가 있고, 콘서트에는 VIP석이 있듯 월드컵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슈퍼리치가 구매하는 것은 뭘까요. 이동의 불편함, 긴 대기줄, 복잡한 인파, 촉박한 일정처럼 다른 팬들이 감수해야 하는 시간과 피로를 돈으로 덜어낸 경험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경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경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불편을 제거하는 특권을 구매합니다. 결국 월드컵이라는 축제를 경험하는 방식은 자본에 따라 분명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그라운드 옆 프라이빗 스위트부터 전용기,

슈퍼요트 위 애프터파티까지.

이번 호에서는 세계 최고 부자들이 월드컵을 즐기는 방식을 들여다봅시다.

ACCESS 01 . HOSPITALITY

경기 관람, 네트워킹, 여행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판매된 펄 라운지. (사진제공=FIFA QATAR WORLD CUP 2022)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판매된 펄 라운지. (사진제공=FIFA QATAR WORLD CUP 2022)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이 열린 루사일 스타디움에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3079 스위트'로 불린 이 공간은 최대 44명을 수용할 수 있었으며, 고급 식음 서비스와 함께 결승전을 포함한 10경기 관람권이 묶여 약 210만 파운드(한화 약 42억원)에 판매됐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 월드컵 호스피탈리티 시장은 한층 더 커졌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의 공식 호스피탈리티 사업은 단 한 곳이 맡고 있습니다. 올림픽과 슈퍼볼, 코첼라 등 대형 국제 행사의 VIP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온 로케이션(On Location)’입니다. 이 회사는 이번 대회의 유일한 공식 제공사로서 다양한 프리미엄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으며, 최상위 상품군에는 '프라이빗 스위트'와 '플래티넘 액세스'가 포함돼 있습니다.

가격은 일반 팬들의 접근 범위를 훌쩍 넘어섭니다. 결승전이 열리는 뉴저지 메트라이프(MetLife) 스타디움의 최상위 패키지는 1인 7만3200달러(한화 약 1억1000만원), 6명에서 12명이 함께 쓰는 프라이빗 스위트는 한 칸에 10만달러(한화 약 1억5000만원)를 넘습니다.

그러나 슈퍼리치들이 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단순히 좋은 시야의 좌석을 확보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구매하는 것은 경기 관람을 중심으로 설계된 별도의 경험에 가깝습니다.

프라이빗 스위트는 말 그대로 프라이빗, 닫힌 공간입니다. 전용 입구로 들어와 좌석까지 곧장 연결되고, 박스마다 전담 인력이 붙으며, 음식과 음료는 손님 취향에 맞춰 짜입니다. 일반 관중이 게이트에 줄을 서는 동안, 이들은 시원한 유리벽 안쪽에서 셰프의 요리와 전담 서비스를 받으며 경기를 기다립니다.

그 위에는 최상위 등급인 '플래티넘 액세스'가 있습니다. 이 등급은 온라인으로 바로 구매할 수 없으며 별도 문의를 통해서만 이용이 가능합니다. 가장 좋은 좌석과 스위트는 물론 숙박, 교통, 각종 현장 프로그램까지 개인의 선호에 맞춰 구성됩니다.월드컵 경기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회 기간 전체를 하나의 여행 경험으로 설계해 주는 셈입니다. 피치사이드 접근과 경기장 프라이빗 투어, 의전 차량, 그리고 ‘레전드와의 만남'까지 이 등급에 포함됩니다.

레전드와의 악수

바로 이 레전드와의 만남이 최상위 등급의 대표적인 혜택으로 꼽힙니다. FIFA는 실제로 어떤 인사가 어느 스위트를 이용했는지 공개하지 않지만, 대회 공식 행사에 참여한 축구 스타들의 면면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카타르 월드컵 당시에는 이케르 카시야스, 카푸, 호베르투 카를루스, 다비드 트레제게, 마르셀 드사이 등이 공식 프로그램에 참여했으며, 트로피 투어에는 2002년 브라질 월드컵 우승 멤버이자 발롱도르 수상자인 카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구역에서 오가는 가장 비싼 것은 음식도 좌석도 아닐지 모릅니다. 월드컵은 세계 각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드문 행사이기 때문입니다.

카타르 개막식에는 카타르 군주 셰이크 타밈 곁에 여러 나라 정상과 사절단이 함께 자리했고, 글로벌 기업 CEO와 국부펀드 관계자, 왕족과 투자자들이 같은 VIP 구역을 채웁니다. 10명에서 많게는 30명 이상을 수용하는 스위트가 기업 고객을 중심으로 판매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에게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가 아닙니다. 경기를 함께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교의 장에 가깝습니다. 90분의 경기 자체보다도, 그 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중요한 자산이 되는 셈입니다.

ACCESS 02 . PRIVATE JET

활주로에서 시작되는 월드컵

▲리오넬 메시가 전용기에 올라타고 있다. (출처=NETJETS 홈페이지 캡처)
▲리오넬 메시가 전용기에 올라타고 있다. (출처=NETJETS 홈페이지 캡처)

카타르 월드컵은 비교적 이동이 쉬운 대회였습니다. 가장 멀리 떨어진 경기장도 차로 한두 시간 남짓이면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6 북중미 월드컵은 전혀 다른 규모입니다. 멕시코시티와 뉴욕, 밴쿠버를 잇는 거리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여러 경기를 직접 따라다니려는 팬들에게 이동은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회 경험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슈퍼리치들의 월드컵은 경기장보다 활주로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이 시장의 대표적인 기업은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소유한 넷젯(NetJets)입니다. 약 800대 규모의 기단을 운영하는 세계 최대 전용기 업체로, 월드컵 기간에 맞추어 최근 공개한 광고에는 아르헨티나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가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반 항공기 좌석의 100배 가격

비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상품인 '25시간 카드'는 연간 비행 시간을 미리 구매하는 방식으로 운영됩니다. 소형기 기준 약 20만달러(한화 약 3억원)를 넘고, 대륙 횡단에 적합한 대형 기종은 50만달러(한화 약 7억5000만원)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더 자주 이용하는 고객들은 아예 항공기 지분을 구매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전용기에 돈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더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전용기는 일반 여객 터미널 대신 전용 시설(FBO)을 이용하기 때문에 긴 보안 검색대나 탑승 대기열을 거칠 필요가 없습니다. 차량에서 내린 뒤 곧바로 비행기에 오를 수 있고, 기내에서는 휴식이나 식사, 업무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결국 슈퍼리치들이 구매하는 것은 비행기 자체라기보다 '시간'입니다. 수만 명이 몰리는 월드컵 기간에도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기와 지연,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 전용기의 가장 큰 가치로 꼽힙니다.

ACCESS 03 . HELICOPTER

하늘의 우버

▲한 여성이 블레이드사의 헬리콥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위를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BLADE)
▲한 여성이 블레이드사의 헬리콥터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 위를 지나고 있다. (사진제공=BLADE)

결승전이 열리는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은 경기 당일 교통 혼잡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힙니다. 보안 강화를 위해 경기장 인접 주차 구역이 제한되면서 일반 관람객들은 멀리 있는 주차장과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합니다. 수만 명의 관중이 한꺼번에 이동하는 만큼 경기 전후 도로 정체도 불가피합니다.

이 때문에 슈퍼리치들은 아예 하늘길을 선택합니다. 블룸버그는 이번 대회 관람객들의 선택을 "주차비 250달러를 내거나, 헬기에 3만달러를 쓰거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뉴욕이나 보스턴에서 헬기를 전세 내 경기장 인근까지 이동하는 데는 수만달러가 들지만, 교통 체증과 대기 시간을 사실상 건너뛸 수 있습니다.

이 시장의 대표 기업은 '하늘의 우버'로 불리는 블레이드(Blade)입니다. 나스닥 상장사인 이 회사는 앱을 통해 헬기 좌석을 예약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공항 이동과 단거리 노선이 주력 상품이지만, 월드컵 기간에는 경기장 이동 수요를 겨냥한 전세 상품도 선보이고 있습니다.

경기시작 30분 전 출발

블레이드가 운영하는 '블레이드 라이브'는 SUV 연계 이동 서비스와 함께 경기장 인근까지 이동하는 패키지를 제공합니다. 일부 노선은 헬기 착륙 지점에서 경기장까지의 차량 이동도 포함합니다. 안내 자료를 보면 맨해튼 헬기장에서 출발해 메트라이프 스타디움 인근에 도착하기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 차량으로는 꿈도 못 꾸는 소요 시간입니다.

가격은 노선과 서비스에 따라 달라집니다. 맨해튼과 테터보로 공항을 잇는 블레이드의 헬기 서비스는 왕복 수천달러 수준에서 시작하며, 헬기를 통째로 전세 낼 경우 비용은 수만달러까지 올라갑니다.

하지만 비행 중 맨해튼 스카이라인과 허드슨강, 자유의 여신상을 내려다볼 수 있어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하나의 관광 상품으로도 활용됩니다.

결국 같은 경기를 보기 위해 이동하더라도 경험은 크게 달라집니다. 수만 명이 같은 길을 향해 움직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잡을 감수합니다.

그러나 슈퍼리치들은 그 혼잡에서 벗어날 방법을 구매합니다.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들이 원하는 것은 더 화려한 경험이 아니라, 계획한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실성입니다.

ACCESS 04 . YACHT

슈퍼요트

▲버제스에서 판매중인 77M급 'MALIA' 요트. (출처=BURGESS 홈페이지 캡처)
▲버제스에서 판매중인 77M급 'MALIA' 요트. (출처=BURGESS 홈페이지 캡처)

이제 슈퍼리치에게 남는 질문은 경기와 경기 사이를 어디에서 보내느냐입니다. 그 답 가운데 하나는 바다입니다.

이번 월드컵 개최 도시 중 마이애미는 세계적인 요트 허브로 꼽힙니다. 일부 슈퍼리치들은 호텔 대신 마리나에 정박한 초호화 요트를 대회 기간의 거처로 사용합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바다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경기 일정에 맞춰 이동하거나 해안가에서 손님을 초대해 만찬을 즐기는 식입니다.

이 시장의 중심에 글로벌 초호화 요트 중개사 버제스(BURGESS)가 있습니다. 이 회사가 다루는 배가 어떤 수준인지는, 지금 단독으로 판매 중인 요트 한 척이 잘 보여줍니다.

말리아

2023년 건조된 77.7m 슈퍼요트 '말리아(MALIA)'는 버제스가 단독으로 판매 중이며, 가격은 1억1000만 유로, 한화로 1900억원대입니다.

손님 열두 명을 위한 배로, 메인 데크의 유리 가장자리 인피니티 풀과 선 데크의 유리 바닥 자쿠지, 사우나와 목욕탕을 갖춘 스파·비치 클럽, 최첨단 AV 시스템까지 갖췄습니다. 2024년 국제 슈퍼요트 협회 상과 국제 요트·항공 어워드를 받은 배이기도 합니다.

물론 슈퍼리치라고 다 배를 사지는 않습니다. 대개는 빌립니다.

말리아 급의 75에서 78m 요트는 한 주 차터가 75만 유로(한화 13억원)에서 85만 유로(한화 약 15억원) 선이고, 여기에 연료와 식음료를 위한 사전 운영비(APA)가 보통 30%가량 더 붙어 한 주에 100만 유로(한화 약 17억원)를 가뿐히 넘깁니다.

그 값으로 호텔 로비의 혼잡함이나 투숙객의 시선에서 벗어나, 바다 위에서 사생활과 서비스를 온전히 누립니다. 낮에는 경기장에서 직관하고, 밤에는 갑판에서 다른 경기를 화면으로 보며 만찬을 즐기는 특급 거처입니다.

이 같은 풍경은 이미 카타르 월드컵에서 나타났습니다. 대회 기간 수십 척의 슈퍼요트가 카타르 해역에 정박했고, 일부는 사실상 떠다니는 호텔 역할을 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48만달러(한화 약 7억5000만원)에 달하는 주간 차터 요트들이 대회 기간 내내 운영됐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마이애미처럼 요트 인프라가 잘 갖춰진 도시에서는 요트가 단순한 숙소를 넘어 하나의 이동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헬기나 차량이 요트에서 출발하고, 경기가 끝난 뒤에는 다시 바다 위의 프라이빗 공간으로 돌아오는 방식입니다.

결국 슈퍼리치들의 월드컵은 경기장 밖에서 완성됩니다.

EPILOGUE

월드컵의 시간 속으로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월드컵은 같은 시각, 같은 경기를 지구 곳곳의 사람들이 함께 바라보는 드문 경험입니다. 누군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경기를 보고, 누군가는 거리의 대형 전광판 앞에 모여 응원합니다. 또 누군가는 경기장 최고의 좌석에서 그 순간을 즐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대상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누리는 일은 낯설지 않습니다. 전용기와 요트, 헬기와 프라이빗 스위트는 그런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런데 경기 시작을 알리는 호각이 울리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문화사학자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를 일상과 구분된 특별한 세계로 설명했습니다. 그 세계 안에서는 바깥의 질서가 잠시 물러서고, 놀이의 규칙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경기장 안팎에 존재하던 수많은 차이는 잠시 흐려지고, 모두가 같은 경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90분은 가장 비싼 좌석에서도, 우리집 거실에서도 같은 속도로 흘러갑니다. 추가시간 3분 역시 누구에게나 같은 길이이며, 페널티킥을 앞둔 정적은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의 숨을 참게 만듭니다. 돈으로 더 가까운 자리를 구할 수는 있지만 승부의 결말을 먼저 알 수는 없습니다.

스포츠가 특별한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떤 순간에는 같은 감정을 공유합니다.

골이 터지는 순간의 환희, 예상치 못한 실점의 허탈함, 종료 휘슬이 울릴 때의 안도와 아쉬움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그것은 사고파는 상품이라기보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경험입니다.

한때 골키퍼였던 알베르 카뮈는 자신이 도덕과 인간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배운 곳이 축구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축구는 결국 공 하나를 두고 함께 기대하고, 함께 실망하고, 함께 기뻐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슈퍼리치들이 전용기와 최고급 스위트를 통해 얻는 것은 더 편안하고 더 쾌적한 관람 환경일 뿐입니다. 하지만 골이 터지는 순간의 전율, 승부가 결정되는 찰나의 떨림까지 더 많이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쩌면 월드컵이라는 축제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세상은 분명 불평등하지만, 어떤 감정만큼은 누구에게나 같은 무게로 찾아온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그 한 달 남짓한 축제가 다시 막을 올렸습니다. 각자의 삶에는 저마다의 걱정과 고민이 있지만, 경기를 관람하는 시간만큼은 그것들을 곁에 내려놓아도 좋겠습니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과 함께 응원하고, 웃고, 아쉬워하고, 때로는 밤잠을 설쳐가며 같은 경기를 바라보는 일. 월드컵의 진짜 가치는 어쩌면 우승 트로피 그 자체보다 그런 순간들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한 달, 세계가 함께 뛰는 이 거대한 축제를 마음껏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승리의 기쁨도, 패배의 아쉬움도 결국은 우리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가는 이야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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