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눈앞에 다가온 ‘배터리금융 시대’

입력 2026-06-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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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이 국내 최초로 전기차 배터리 팩 구독 실증 사업에 나선다고 한다. 현대차와 현대캐피탈이 차량과 배터리 팩의 소유권을 분리하고, 사용자는 월정 구독료를 내는 방식이다. 이번 실증 사업의 핵심은 자동차 산업이 ‘자동차 금융’의 시대를 넘어 ‘배터리 금융’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동안의 자동차 산업은 ‘자동차 전체’를 일시금이나 할부(리스 포함)로 소비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통례였다. 그러나 전기차 시대에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전기차 배터리도 구독료 내고 빌려 써

배터리 팩은 성능 저하와 화재 위험, 중고차 잔존가치 하락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소모품’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폐차 때 평가가 극명하게 달라진다. 희유원소에 기인한 잔존가치가 가장 높아 부품 중 배터리 팩이 가장 비싸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업계가 직시하기 시작했다. 특히 팩 반납 의무가 사라지며 폐배터리 팩을 둘러싼 ‘소리 없는’ 쟁탈전이 이미 발발했다.

이번 실증 사업의 핵심은, 잔존가치가 큰 배터리 팩의 특성을 고려해 그 총 소유 비용을 개인 소비자가 아닌 금융·서비스 체계가 분담하자는 데 있다. 넓게 보면, 자동차 산업이 기존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운영·금융·에너지 서비스 산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실증 사업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배터리 팩을 독립 자산으로 관리하는 체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는 배터리 팩의 전 주기 이력 관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뜻이다. 자동차에 차대번호가 있듯, 배터리 팩에도 고유 식별번호를 부여하여 할 수 있다. 그래야 제조·교체·운영·에너지저장장치(ESS) 재사용·재제조·유통·재활용에 이르는 전 주기를 추적할 수 있다.

배터리 팩에 고유 번호가 부여되면, 축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잔존가치를 평가하는 생태계도 구축할 수 있어 배터리 팩은 ‘독립 자산’으로 지위가 격상될 수 있다. 나아가 담보 설정과 자산유동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으로도 대우받을 수 있다.

배터리 구독 개념 그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필자는 2011년 저서 ‘그린카 콘서트’에서 전기차 보급의 최대 걸림돌로 배터리 가격을 지목하며, 차량과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하는 ‘배터리 팩 리스’ 모델이 ‘총소유비용’ 측면에서 가장 유력하다고 처음 제안한 바 있다. 당시에는 제도·산업·기술의 미성숙으로 실현되지 못했으나, 15년이 지난 지금, 산업 현장에서 그 아이디어가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배터리 팩 고유 번호 체계도 필자가 2022년 대통령직인수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배터리 팩 고유 식별 체계의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한 바 있으나, 안타깝게도 실행계획까지 발전하지 못했다.

배터리팩에 고유번호 부여해 全주기 관리

2022년에도 늦었다고 생각하고 드라이브 걸었던 구상이 정권이 바뀌어서야 실증 사업으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을 늦었다고 후회해 본들 무의미하다. 개념은 우리나라에서 먼저 만들어졌지만, 중국이 이미 구현해버렸다. 이는 다양한 배터리 팩을 원활하게 수급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중국에 먼저 구축된 덕도 크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산업도 앞으로 좋은 차를 만드는 데 머물기보다 금융 자산화된 배터리 팩 리스가 경쟁의 축으로 부상할 수 있다. 미래 전기차 시장의 패권은 가장 많은 배터리를 수급하고, 그 가치를 정확히 평가하는 생태계를 구축한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자동차 금융이 자동차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듯, 배터리 금융이 우리나라 전기차 산업의 새로운 성장 엔진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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