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거래소 인사와 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협의 없는 결정"이라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노조와 증권업계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고 지적한다. 사실상 독점적 시장 운영기관인 한국거래소의 핵심 의사결정이 금융당국 출신 경영진의 '속도전'에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달 13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한구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파생상품시장본부장(부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새로 선임된 한구 파생상품시장본부장은 금융당국 행정 관료 출신으로 파생상품이나 증권 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핵심 보직인 파생상품시장본부장(부이사장) 인사는 검증 절차 없이 이사장 독단으로 결정될 수 있는 구조다. 한국거래소 정관상 이사장과 상임감사위원, 사외이사는 9인으로 구성된 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검증을 거치지만, 3명의 부이사장은 이 절차가 적용되지 않는다. 제도적 거름망이 없는 상황에서 이번 인사는 내부 조직원들과의 어떠한 소통이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단행됐다.
노사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자 노조는 법적 수단을 택했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은 지난달 11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산경실련과 함께 감사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익감사 청구를 접수했다. 금감원 고위직 출신 인사가 거래소 임원으로 선임된 과정에서의 인사 개입 의혹을 전면 조사해 달라는 요구였다.

일방통행식 의사결정이 가져온 부작용은 인사뿐만 아니라 시장의 핵심 제도 개편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거래시간 연장 추진 과정이 단적인 사례다. 거래소는 올해 1월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르면 6월 말부터 거래시간을 연장하겠다는 목표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막상 시행 시점이 다가오자 증권사들의 시스템 준비가 여의치 않다는 반발이 쏟아졌고, 거래소는 결국 시행 시기를 6월 29일에서 9월 14일로 미뤘다. 업계와의 사전 조율 없이 일정을 못 박았다가 현장의 반발에 밀려 후퇴한 셈이다.
이창욱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증권본부장은 "정은보 이사장의 치적 쌓기가 목적이 아니라면 이렇게 무리하게 서두를 이유가 없는 사안"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특정인 한 사람의 지시로 무조건 밀어붙일 게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충분한 시간을 주며 안정화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누군가의 실적 쌓기용으로 제도가 급조돼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 본부장은 "최근 거래소의 의사결정 방식 대부분이 이런 식"이라며 "거래소가 일방적으로 시스템 전환 기한을 정한 뒤 실무자나 회원사 기관들을 수시로 소집해 '기한 내에 무조건 완수하라'며 수직적인 지시를 내리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의사결정 방식에 대한 비판도 이어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원래도 한국거래소가 감리나 기업공개(IPO) 승인 권한을 쥐고 있다 보니 주주인 증권사들로서는 끌려갈 수밖에 없다"며 "특히 정 이사장이 금융위 부위원장 출신 관료라 강압적인 분위기가 더 심해진 것 같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인사와 제도 전반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결국 '의견 수렴 과정'의 부재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거래소 정책은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전 협의와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며 "지금은 결정이 먼저 나오고 설명이 뒤따르는 구조"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