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환율에 달러예금 급증…외환 수급 불안 커진다

입력 2026-06-0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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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은행 달러예금 619.9억달러⋯두달새 47억달러↑
법인 비중 80.5%로 확대⋯기업들, 수출대금 환전 미뤄

원·달러 환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은행권 달러예금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수출 호황으로 외화를 확보한 기업들이 추가 환율 상승을 기대하며 환전을 늦춘 결과다. 기업 계좌에 묶인 달러가 외환시장 수급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이달 5일 기준 619억900만달러로 집계됐다. 두 달 전인 3월 572억2000만달러와 비교하면 46억8900만달러 불어난 수준이다. 증가세는 법인이 주도했다. 5대 은행의 법인 달러예금은 3월 447억2200만달러에서 4월 480억4400만달러, 5월 499억2900만달러로 빠르게 회복했다. 이달 5일 기준으로도 498억2600만달러를 기록해 500억달러에 근접했다. 전체 달러예금에서 법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0.5%까지 높아졌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관련 수출 호조가 법인 달러예금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수출기업들이 해외에서 받은 계약금과 수출대금을 달러로 보유하면서 은행권 법인 예금 잔액이 불어난 것이다.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까지 확산하면서 기업들이 환전 시점을 늦추는 분위기도 강해졌다.

수출 호조에도 환율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달러가 들어와도 시장에 충분히 돌지 않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반도체와 AI 관련 수출 확대로 기업의 달러 유입은 늘었지만, 환율 추가 상승 기대가 커지면서 환전은 늦춰지고 있다. 외화 수입이 예금 계좌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도 깊어질 수 있다.

문제는 기업의 달러 보유 확대가 외환시장 수급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출기업이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환전을 미루고 예금으로 보유하는 기간이 길어지면 시장에 공급되는 달러가 줄어 원화 약세 압력이 완화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다.

환율 불안은 당국의 구두 개입을 부를 정도로 커졌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55.2원까지 오르며 주간거래 기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50원 선을 넘어섰다. 외환당국이 과도한 쏠림에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힌 뒤 환율은 1540원대로 상승 폭을 줄였다.

시장에서는 고환율이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국채금리 상승과 달러 강세,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변동성 등이 원화 약세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환율 상승 기대가 꺾이지 않으면 기업들의 달러 보유 수요도 쉽게 줄어들기 어렵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 상승 기대가 달러 매수와 보유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며 “환율에는 구조적 상승 압력이 있고 높아진 눈높이와 작은 쏠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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