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 하나가 정치권과 금융시장을 동시에 흔들었다. 논란의 핵심은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이었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과 공유할 수 있느냐는 문제 제기는 곧바로 “반기업 정서”, “증세론”, “시장 개입” 논쟁으로 번졌다. 발언 당일 코스피가 5% 넘게 급락하자 시장의 불안감도 증폭됐다. 결국 표현 하나가 의제 전체를 집어삼킨 셈이다.
그러나 정작 김 실장의 메시지 어디에도 기업 이익을 직접 빼앗겠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가 꺼낸 것은 "인공지능(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단순한 분배론이라기보다 AI 시대 국가 재정과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미리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 가까웠다. 결국 달이 아닌 손가락만 바라본 것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AI를 중심으로 한 거대한 구조 변화의 초입에 들어섰다. 반도체와 데이터, 플랫폼, 전력 인프라를 장악한 소수 기업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초과이윤을 창출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부가 기존 산업혁명과 달리 고용과 임금으로 충분히 확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높아지는데 그 과실이 노동시장 전체로 번지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김 실장이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현재의 반도체 호황을 단순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한국이 AI 공급망과 제조 역량에서 확보한 전략적 우위가 만들어낸 구조적 변화로 봤다. 마치 산유국이 북해유전을 확보한 것처럼, AI 시대 핵심 인프라를 가진 국가가 장기간 초과이윤을 얻는 국면에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소 과장된 비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숫자는 결코 가볍지 않다. 반도체는 이미 한국 전체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폭증하는 현 흐름도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고민은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도 시작됐다. 미국 의회에서는 AI 기업의 독점적 시장 지배력과 초과이익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AI법(AI Act)과 별개로 플랫폼 기업 과세와 데이터 주권 문제를 검토 중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미국 AI 기업 경영진조차 AI가 창출하는 막대한 부의 사회적 환원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좌우 이념 논쟁이라기보다, 기술 패권 시대에 국가·시장·사회의 새로운 균형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에 가깝다.
물론 김 실장의 표현이 지나치게 거칠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렵다. 시장은 단어에 민감하고 정책 언어는 무엇보다 정교해야 한다. ‘국민배당금’이라는 표현은 주주 배당을 연상시키며 불필요한 오해를 불렀고, ‘초과이윤’이라는 단어 역시 기업 수익을 직접 환수하겠다는 신호처럼 읽힐 여지가 있었다. 실제로 시장은 그 불확실성에 즉각 반응했다.
하지만 표현의 미숙함과 문제 제기의 본질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AI가 만들어낼 구조적 양극화 가능성을 외면한 채 “시장이 해결할 것”이라고만 말하기에는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특히 한국은 반도체와 AI 인프라 경쟁력이 국가 경제 전체와 직결돼 있는 나라다. 특정 산업과 기업에 부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 성과를 어떻게 사회 전체의 성장 동력으로 연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그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교육 투자일 수도 있고, AI 전환 과정에서 밀려나는 노동자 재교육일 수도 있으며 미래 산업 인프라 확충이나 사회 안전망 강화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단순한 재분배가 아니라 AI 시대의 과실을 어떻게 지속 가능한 성장 구조 안에서 순환시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어 하나를 둘러싼 감정적 공방이 아니다. AI가 만들어낼 새로운 부와 격차를 어떤 원칙 아래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차분하고 현실적인 논의다. 이제는 정말 손가락이 아니라 그 너머의 달을 봐야 할 때다. 김 실장도 유념해야할 대목이 있다. 정책실장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정책으로 완성해 내는 데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