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몰리는 곳은 복잡합니다. 밀리기 마련이고, 늦어지는 시간도 감수해야 하는데요. 이곳이 ‘놀이공원’이라면 더욱더죠.
특히 주말과 공휴일, 방학과 어린이날이 겹치는 시기라면, 인기 놀이기구 앞에는 대기 시간 표지판이 60분, 90분, 때로는 120분이 으레 붙게 되는데요. 이런 가운데 대기자들의 앞을 지나가는 ‘소지권자’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뭇 많은 생각이 스치죠. 그런데 생각으로만 머물지 않았던 이의 발언이 논란이 거세졌는데요. ‘상대적 박탈감’과 함께 말입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놀이공원의 유료 우선 탑승권 ‘매직패스’ 이용자들 때문에 불쾌감을 느꼈다는 글이 게재됐는데요. 작성자는 한 시간가량 줄을 서는 동안 매직패스 이용자들이 계속 앞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박탈감을 느꼈다고 주장했죠. 아이가 “왜 저 사람들은 새치기하느냐”고 물었다는 사연도 덧붙였는데요.

문제 제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죠. 작성자는 서민들이 박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런 시스템을 막아달라며 이재명 대통령을 언급하면서 논란은 단순한 놀이공원 이용 불만을 넘어섰습니다.
롯데월드의 매직패스는 2006년 도입돼 햇수로 21년째 운영되고 있는데요. 권종별로 각각 만4000원, 6만5000원, 8만원 등 가격 차가 있는 ‘매직패스’는 장권과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고 인기 어트랙션 대기 시간을 줄이는 구조입니다. 에버랜드 또한 ‘플랜잇(Plan-it)’이란 비슷한 상품을 판매 중인데요. 시간지정 기종 1매와 시간미지정 그룹 2매로 구성됐죠.
방문예정일 기준 7일 전부터 1일 전까지 예약 가능하며 한정 수량으로 판매돼 선착순 마감될 수 있는데요. 롯데월드의 ‘매직패스’ 또한 사전 예매는 방문일 2일 전 자정부터 방문 전일 밤 11시 59분까지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 이를 얻기 위해선 ‘티켓팅 전쟁’을 벌여야 하죠. 인기 날짜에는 판매 시작 직후 물량이 빠지고 가족 단위 방문객이 여러 장을 함께 확보하려면 입장권 예매만큼이나 빠른 손놀림과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번 논란이 거센 역풍을 맞은 이유는 매직패스가 비싸다는 지적 때문만은 아니었는데요. 놀이공원 안에서 유료우선탑승권이 주는 불편함을 말하는 것과 그 제도를 국가가 막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죠.

반응은 빠르게 갈라졌습니다. 일부는 “놀이공원은 아이들이 줄서기와 질서를 배우는 공간인데 씁쓸하다”, “가족 단위 공간에서 불평등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작성자의 감정에 공감했는데요. 그러나 대부분은 “사기업의 운영 방식에 국가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소비”라는 반박으로 채워졌습니다.
뼈 때리는 비판은 이것으로 멈추지 않았죠. 매직패스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면 비즈니스석은 어떻게 볼 것이냐는 반문이 시작이었는데요. 외제차, 호텔 뷔페, 고급 식당, 콘서트 VIP석, 기업 성과급도 모두 누군가에게는 박탈감의 대상이 될 수 있지 않냐는 지적도 잇따랐죠.
그러면서 이 ‘상대적 박탈감’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는데요. 이 ‘상대적 박탈감’이란 용어는 이렇게 가볍게 쓰이는 유행어는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980년대 후반에 이미 학술문헌에 등장했죠. 원래 쓰임은 단순한 질투나 불평과는 거리가 있었는데요. 객관적으로 얼마나 가졌느냐보다, 자신이 비교하는 집단과 견주었을 때 얼마나 덜 가졌다고 느끼는지가 핵심이죠.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비교에서 생기는 결핍감, 불공정감, 좌절감을 설명하는데요. 그렇기에 이 개념은 빈부격차, 계층 인식, 사회복지, 범죄, 정치적 불만, 조직 내부 갈등 같은 문제를 분석하는 데 쓰였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IMF 외환위기 이후 빈부격차와 구조조정의 언어로 자주 등장했고 2010년대에는 금수저·흙수저, 헬조선, 청년실업, 부동산 격차와 동행(?)했는데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에는 남의 소비와 여행, 집과 연봉, 육아와 성취가 계속 눈에 들어오면서 더 일상적인 감정이 됐죠. 남의 삶은 더 잘 보이는데 내 삶은 제자리처럼 느껴지는 시대,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불평등을 설명하는 말이자 개인의 비교 피로를 드러내는 말로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앞서 설명한 바대로 “내가 불편하니 없애달라”는 요구의 근거처럼 쓰이면서 문제가 됐죠.
매직패스 논란이 유독 더 크게 조롱받은 배경에는 최근 학교 현장에서 쌓여온 피로감도 한몫합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이 이미 학부모 민원, 경쟁 요소 폐지, 학교 행사 축소 논란과 함께 반복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인데요.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반장선거가 사라지고, 학급 임원을 순환식으로 맡는 방식이 도입됐죠. 상장 수여, 운동회 점수판, 소풍 같은 전통적인 학교 활동도 학부모 민원이나 갈등 우려 때문에 축소되거나 변형되는 사례가 나왔습니다.
아이를 보호하려는 마음 자체를 탓할 수는 없지만 학교가 승자만을 칭찬하고 나머지 아이들을 투명인간처럼 만드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은데요. 아이가 질 수도 있고, 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고, 친구보다 늦게 뽑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험까지 모두 박탈감으로만 해석한다면 학교는 어떤 활동도 마음 편히 운영하기 어렵죠.

결국은 ‘차등’과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에서 오는 건데요. 차별은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일인 반면 차등은 조건과 선택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죠. 모든 차등이 정당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차등이 곧 차별인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먼저 들어가는 장면은 불편할 수 있죠. 돈을 더 낸 사람이 더 편한 서비스를 누리는 구조도 씁쓸할 수 있는데요. 그러나 불편함이 곧 부당함은 아니라는 것,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모두 차별로 볼 수 없다는 점. 이번 논란을 통해 생각해 볼 지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