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눈] ‘스위프트Ⅱ’ 한국 유치의 꿈

입력 2026-04-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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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현 부국장 겸 채권전문기자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취임사는 과거를 설명하면서도 분명 미래를 겨냥했다. “중앙은행의 역사는 경제환경의 변화에 부응하여 끊임없이 진화해 온 과정”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17세기 예금은행에서 출발해 20세기 초 대공황과,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기능을 확장해 온 중앙은행 변천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명확하다. 중앙은행 변화는 정립된 이론이 아니라 ‘경험’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지금의 금융환경 역시 기존 틀로 설명하기보단 새로운 실천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이는 그의 국제결제은행(BIS) 최근 연구들과도 맞닿아 있다. 올 1월 BIS·법률 및 금융연구소(ILF) 공동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조정 도구로서의 화폐: 역사적 교훈(Money as a coordination device: some historical lessons)’ 등 그의 자료를 보면 금융시스템이 은행 중심에서 시장 기반 금융으로 이동하면서 중앙은행 역할도 통화정책을 넘어 금융안정과 글로벌 유동성 관리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제시한 임기 4년간 중점 추진 과제 네 가지 중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국제화·디지털화된 금융환경에서의 지급결제 안정성’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아고라 프로젝트’다.

아고라 프로젝트는 BIS가 추진 중인 차세대 지급결제 인프라 구상이다. 기존 국제결제망인 스위프트(SWIFT)가 ‘메시지 전달 중심 구조’라면, 아고라는 토큰화된 자산과 중앙은행 화폐를 결합해 결제와 자산 이전을 동시에 처리하는 ‘가치 이전 기반 구조’를 목표로 한다. 아고라 프로젝트가 ‘스위프트Ⅱ’ 혹은 ‘스위프트 2.0’으로 불리는 이유다.

1973년 벨기에에서 발족한 현재 스위프트 시스템은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자금 이동은 각국 은행 계좌를 거쳐야 해 시간과 비용이 발생하고, 중개 단계가 많아질수록 리스크도 커진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가지는 이 차세대 인프라를 한국이 선도할 수 없을까라는 것이다. 신 총재는 BIS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와 정책 논의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한국 기반 역시 부족하지 않다. 고도화된 전자결제 시스템과 높은 디지털 수용성, 빠른 금융혁신 속도는 강점이다. 여기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까지 더해지면서 테스트베드(test bed)로서의 기반도 충분하다.

그간 한국은 글로벌 금융인프라 논의에서 주도권을 잡기보단 참여에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하는 지금 상황은 다르다. 새로운 표준이 만들어지는 초기 단계에서의 포지셔닝이 향후 국제 금융 질서를 좌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적 제약도 있다. 글로벌 결제 인프라는 정치·외교·규제 등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과 유럽 주요국들이 주도해 왔던 만큼 한국이 단독으로 선도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기회는 있다. 기술 전환기에는 기존 질서가 느슨해지고 새로운 참여자가 등장할 여지가 커진다. 과거 스위프트 역시 특정 국가의 독점 구조가 아닌 국제협력을 통해 형성됐다. 지금의 아고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신 총재가 강조한 “경험이 이론으로 이어진다”는 말은 이 지점에서 다시 의미를 갖는다. 신 총재가 스위프트Ⅱ를 유치해 낸다면 한국은 21세기 세계 디지털금융 허브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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