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로스쿨 넘어 의대행…"당장 일할 실무진 없다" 토로

안정적인 평생 직장으로 불리던 공직 사회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젊은 엘리트 관료들의 주요 이탈 경로였던 대기업 이직이나 로스쿨 진학을 넘어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는 사례들이 늘고 있어서다.
20일 정부 부처에 따르면 중소벤처기업부 소속 4년 차였던 사무관 A씨는 재작년 퇴직하고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치러 현재 지방 거점 C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현재 그는 예과 2년 차에 재학 중이다. 행정고시 등 수험 기간과 4년간의 공직 생활을 합쳐 10년 넘게 수능과 거리를 두었던 직원이 단기간에 좁은 의대 문턱을 넘자 내부에서는 놀라움과 부러움이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는 후문이다.
의대 진학을 위해 공직 업무와 수능 준비를 병행하는 대신 아예 직장부터 그만둔 사례도 있다. 올해 2월까지 경제 부처 사무관이었던 B씨는 합격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과감하게 공직 생활을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일이 너무 바빠 직장을 다니며 수능을 준비하는 건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이러한 이탈 행렬은 일반 부처 공무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관가 안팎에서는 "고등학교 선생님과 제자가 함께 의대에 진학했다"는 사례가 공공연하게 언급될 정도로 교직에 있던 인력마저 의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공공 부문의 '엑소더스(대규모 이탈)' 현상은 통계 수치에도 드러난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반직 국가공무원의 전체 퇴직자 8670명 중 정년퇴직 등이 아닌 본인의 의사로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의원면직'은 5443명에 달했다. 전체 퇴직자의 62.7%가 제발로 공직을 떠난 셈이다. 이 중 이른바 '젊은 관료' 계층에 속하는 5급 공무원의 의원면직 건수는 전체 5급 퇴직자 858명 중 461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일반직 공무원 의원면직 추이를 살펴보면 2019년 4210명, 2020년 4255명 수준에서 2021년 5052명으로 가파르게 급증했다. 이후 2022년 5605명, 2023년 5654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에도 5443명을 기록하며 4년 연속 5000명대를 상회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보수와 과도한 업무량, 악성 민원에 따른 스트레스 등 구조적인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여기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합리적 보상을 중시하는 MZ세대의 가치관이 상명하복식의 경직된 조직 문화와 충돌하면서 "조금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활로를 찾겠다"며 공직을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 고위공무원은 "공직 생활에 회의를 느껴 대기업 이직이나 로스쿨, 심지어 의대 진학을 준비하는 젊은 관료가 늘고 있다"며 "당장 현안을 처리할 실무 사무관들이 빠져나가면서 부처 내에 '일할 사람이 없다'는 구인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국가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핵심 인력들의 이탈은 곧 국가 경쟁력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고 지적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발적으로 공직을 떠나는 공무원들이 늘어나는 것은 국가 차원에서 큰 손실인 만큼 업무 과중 해소를 위해선 인력 확충이 필요하고 현재 일하는 재직자의 저임금 등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