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자본시장의 고질적 병폐로 지목되던 중복상장으로 금융당국의 칼끝이 향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중 중복상장 관련 규정을 마련해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나설 예정이다. 소액주주의 눈물을 담보로 대주주의 배를 불리던 관행을 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회수시장의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증시에서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하는 중복상장은 일종의 '치트키'처럼 활용됐다. 그룹사 입장에서는 자회사 상장을 통해 계열 지배력을 공고히 유지하면서도 대규모 외부 자금을 손쉽게 조달하는 수단이었다.
반면, 상장 모회사 소액주주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웠다. 알짜 자회사가 독립 상장하면 모회사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아 주가 하락을 피할 수 없었고, 이 과정에서 주주권익이 심각하게 침해됐다. 투자자들과 자본시장 관계자들이 이번 규정 마련에 원칙적으로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장의 공정성을 회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이번 규제가 자본시장의 또 다른 축인 모험자본의 목을 조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당장 현금 유동성이 부족하지만, 성장성이 높은 비상장 그룹 계열사들은 그간 사모펀드(PEF)나 벤처캐피탈(VC)로부터 자금을 수혈받아 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자들이 통상 내건 조건은 '기한 내 기업공개(IPO)'다. 인수합병(M&A) 시장이 경직된 한국 시장 특성상, IPO는 사실상 유일하고 확실한 회수 경로였다. 3~4년 전 IPO를 전제로 수천억원을 쏟아부은 위탁운용사(GP)들은 이제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펀드 만기는 다가오는데, 중복상장 규제가 본격화되면 상장 심사 문턱은 높아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회수 불투명이라는 리스크로 직결된다.
자본시장의 물을 흐리는 중복상장은 철저히 막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정책의 선의가 시장의 활력을 갉아먹는 규제의 역설을 경계해야 한다. 현재 한국 회수시장은 IPO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 중복상장을 막아야 한다면 대안으로 기업 간 M&A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병행돼야 한다. 퇴로가 막힌 시장에 뛰어들 투자자는 없다. 아울러 VC와 PEF의 투자는 단순한 투기를 넘어 기업의 성장을 돕는 생산적 금융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의 회수길이 막히면 그룹 계열사에 대한 신규 투자는 급감할 것이며, 이는 곧 산업 전반의 자금 경색으로 이어진다.
중복상장 규제는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자본 순환이 막힐 수 있는 리스크를 안고 있다. 거래소가 마련할 세부 규정에는 금지령뿐만 아니라, 막힌 회수 시장을 어떻게 뚫어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 시장 정화라는 명분이 투자를 위축시키는 부메랑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