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가 다시 시장의 시동을 걸고 있지만, 유가가 회복 속도를 늦추고 있다. 중동 긴장 고조에 글로벌 증시가 흔들리면서 국내 증시도 상승 추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하락했다.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AI가 주가를 끌어올리고 유가가 짓누르는 국면이 계속되면서 업종별로 수혜와 피해가 엇갈리고 있다.
핵심은 AI 랠리가 미래 기대를 먹고 움직이는 반면, 유가 상승은 현재 비용을 자극한다는 점이다. AI 투자 확대는 반도체, 서버, 전력 인프라, 소프트웨어 수요를 키우는 장기 서사다. 반면 유가는 당장 물류비와 생산비, 전력비, 소비 여력을 흔든다.
고유가가 길어질수록 조선, 기계, 상사·자본재, 에너지, 일부 운송 업종은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간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정유 업종은 재고평가이익과 정제마진 확대 기대를 받을 수 있다. 실제 아시아 정제마진은 최근 2022년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고, 항공유와 경유 마진이 급등하면서 정유사 실적 기대도 커지고 있다. 다만 국내에서는 정부가 유류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고 정유사의 공급 물량까지 관리하기 시작해, 국제유가 상승이 곧바로 이익 확대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변수다. 정부가 손실 보전 방침을 내놨지만 가격 통제로 수익성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유가 상승 속 대안에너지의 가치가 커진 점도 주목된다. 정부는 에너지 안정을 위해 원전 이용률을 최대 80% 수준까지 높이고,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도 이번 에너지 충격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추고 원전·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배경에서 원전, 전력기기, 신재생에너지 관련 종목으로 수급이 쏠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은 최근 외국인 수급이 반도체와 자동차 등 급등 업종에서 일부 이탈하는 사이 조선, 방산, 원전 등 실적 전망이 살아 있는 업종으로 이동했던 흐름에도 주목한다. 9일부터 17일까지 외국인 순매수 상위 종목은 두산에너빌리티(2020억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1370억원), 삼성중공업(1340억원) 등이 차지했다.
반대로 항공, 화학, 증권, 디스플레이, 유틸리티, 소비 관련 업종은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화학 업종은 원가 부담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동 리스크로 나프타 조달 차질 우려가 커지면서 아시아 나프타 마진이 4년 만의 고점까지 뛰었고, 이는 석유화학 업체들의 비용 부담과 수익성 악화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LG화학은 23.35% 폭락했다.
항공업은 타격이 가장 직접적이다. 최근 글로벌 항공사들은 유가 급등에 따라 운임 인상, 실적 가이던스 철회, 감편에 나서고 있다. 일부 항공사는 항공유 가격이 열흘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달 들어 대한항공은 전날까지 주가가 9.25%, 아시아나항공 6.83%, 제주항공은 15.27% 하락했다. 다만 이들 업종은 유가에 즉각적으로 흔들리는 만큼, 향후 유가가 꺾일 경우 반등 탄력도 가장 클 수 있다는 평가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료비 급등, 환율 부담이 기업 실적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점은 4월부터로 판단된다”며 “매출이 견조한 만큼 연료비가 고점을 형성했다는 컨센서스만 형성돼도 주가 반등 동력은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