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웹포털 구축·녹색여신 심사 AI 도입…전문가 “판단 체계 전산화 필요”

은행권 녹색여신 잔액이 금융당국 관리지침 도입 이후 1년 만에 급감한 배경에는 현장의 심사 인프라 부족과 자율 적용에 따른 제도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수기 중심의 심사 체계를 디지털화하고 인공지능(AI) 기반 검증 시스템을 도입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이 지난달 발간한 ‘ESG 금융백서’에 따르면 국내 44개 금융사 가운데 25곳은 아직 녹색여신 관리지침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침을 적용하고 있는 19개 기관 역시 과도한 사후 관리 부담과 기준 해석의 모호성을 주요 애로 요인으로 꼽았다.
현행 지침에 따르면 녹색여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 따라 활동 기준뿐 아니라 배제 기준(DNSH)과 보호 기준까지 충족해야 한다. 문제는 기술적 난도가 높은 지표를 영업 현장 실무자가 서류 중심으로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차주가 제출한 환경 성과 자료와 기술 증빙을 일일이 검토해야 하는 데다 동일한 사업을 두고도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는 것이 금융권의 공통된 설명이다.
김도연 삼일회계법인 파트너는 “지침에 따른 녹색여신 요건을 검증할 전문 인력과 인프라가 금융권 전반에 부족한 상황”이라며 “수기 심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스템 기반 판별 체계를 구축하고 담당 직원에 대한 전문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러한 현장 애로를 반영해 여신 심사 체계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신용정보원을 중심으로 ‘기후금융 웹포털’을 구축해 올해 3분기 시범 운영에 나설 계획이다. 은행권은 이 포털을 통해 업종 코드와 프로젝트 개요, 핵심 키워드 등을 입력하면 해당 사업이 K-택소노미상 녹색 또는 전환금융 기준에 부합하는지 확인할 수 있고 관련 판단 가이드와 체크리스트도 제공받게 된다.
민간은행의 선행 사례도 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8월 시중은행 가운데 처음으로 여신 심사에 활용하는 ‘K-택소노미 전문 상담 AI’를 도입했다. 핵심 키워드를 입력하면 해당 경제활동의 적합 여부와 필요 서류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이다.
현석 연세대학교 환경금융대학원 교수는 “녹색여신 제도의 핵심은 온실가스 감축량 등 비재무 정보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표준화된 데이터와 판단 체계가 마련돼야 녹색여신이 단순한 양적 확대를 넘어 실질적인 환경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