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옥 칼럼] 메디치 은행이 남긴 교훈

입력 2026-03-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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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前 한국경제학회장

르네상스 대표 가문인 ‘메디치’
외환 거래 장악 막대한 부 축적
부실 경영·사치로 결국 막 내려

한국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2003년에 발표된 ‘실미도’이다. 그 이후 심심찮게 1000만 관객을 끌어모으는 영화가 발표되었다. 최근에는 ‘왕과 사는 남자’라는 영화가 1000만 관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수양대군(세조)의 정변 이후 단종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인 모양이다.

수양대군이 김종서, 황보인 등을 참살하고 실권을 장악한 사건이 1453년 발생한 계유정난(癸酉靖難)이다. 같은 해 서유럽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 막을 내리고 장미전쟁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유럽의 동쪽에서는 100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하던 비잔틴(동로마)제국이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하였다. 장구한 세월 동안 유지되던 로마제국의 잔재가 소멸하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사건으로 점철된 15세기는 르네상스가 무르익던 시기였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와 가문은 아마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일 것이다. 1453년은 메디치 가문이 지금과 같은 명성을 누리게끔 이끈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 1389-1464)가 왕성히 활동하던 시기였다.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은 1397년 코시모의 아버지 조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di Bicci de’ Medici,1360-1429)가 로마로부터 이주하면서이다.

14세기 말부터 번성하기 시작한 메디치 은행은 1453년경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해외에는 제네바(Geneva), 아비뇽, 브뤼허, 런던에 지점을 두고 있었다. 메디치 가문은 모직과 비단 생산 시설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로방스 및 브라반트 등 저지대 국가와 경쟁하여야 하였다. 1466년부터 1478년 사이에는 로마 부근 교황령에서 생산되던 명반(alum) 광산을 독점으로 운영하였다. 명반은 의류 염색에 매우 중요한 원료였다.

제조업과 광산을 운영하기도 하였으나 메디치 가문 사업의 핵심은 은행업이었다. 메디치 은행은 심지어 교황의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기까지 하였다. 막대한 교회의 자금이 메디치 가문의 손을 거쳐 이동하였다. 메디치 은행의 사업은 주로 외환 거래였다. 한 지역에서 일어난 무역과 대부 거래에 따른 청구권(claims)을 다른 화폐를 사용하는 지역으로 송금하는 역할이었다. 이탈리아 안에서도 도시마다 다른 화폐를 사용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의 거래도 빈번하였기 때문에 외환 거래는 매우 중요하였다.

외환 거래는 국제 환어음(international bills of exchange) 매매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자 금지법(usury)에 위반되기 때문에 환어음 매매에 할인(discounting)은 적용되지 않았다. 대신에 이자는 환율에 포함되어 거래되었다. 그런데 환율은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불확실하였다. 따라서 환율에 가산된 이자를 알아내기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거래에서 이자가 계상되는 경우는 암묵적이지만 용납되었다. 메디치 은행은 (지분) 투자가 아닌 예금을 수취하기도 하였다. 이 경우에도 이자가 명시적으로 표시된 계약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메디치 은행은 코시모의 사망 이후 기울기 시작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15세기의 불황 때문이었다. 이때 불황의 원인은 다양하였다. 무엇보다도 흑사병에 따라 감소한 인구가 15세기 말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과의 향료 및 비단 무역에 따른 만성적인 적자 때문에 유럽 전역에 전황(錢荒)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플랑드르와 브라반트와 같은 저지대 국가 또한 발트해 무역으로부터 적자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남쪽으로의 송금이 쉽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치와 경영이었다. 전쟁을 치르고 있던 영국, 프랑스, 부르군트의 왕과 제후들에게 거금의 전쟁 비용을 대부하고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부를 받은 왕과 제후들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이에 더하여 메디치 박물관의 화려한 미술품들이 웅변하듯 코시모의 자식과 손자들의 사치벽이 심각하였다. 결국 정치와 경영부실 때문에 영국 지점부터 파산하기 시작하여 1494년에는 메디치 은행이 문을 닫고 가문은 피렌체에서 추방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메디치 은행의 실패로부터 얻는 교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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