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으로 속도·통제력 확보하고
여야합의 통해 정치 병목 제거하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회의 대미 투자 관련 법안 처리가 늦다’는 이유로 관세를 25%로 다시 올리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단순한 통상 갈등이라기보다 전형적인 정치와 협상을 결합한 트럼프식 압박 전략에 가깝다. 관세는 경제정책의 결과물이 아니라 협상의 지렛대로 쓰이고, 상대국의 국내 절차는 그 지렛대가 파고드는 가장 취약한 지점으로 선택된다.
무엇보다 트럼프의 진짜 의도는 관세 자체보다 지렛대의 유지에 있다. 관세를 실제로 올리느냐보다, 언제든 올릴 수 있다는 불확실성을 시장과 정부에 주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낸다. 즉, 트럼프는 한국의 정책 결정 속도를 끌어올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에 더 유리한 협상 조건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제 논쟁의 중심은 대미 투자 이행 법안으로 옮겨간다. 관련 법안은 대미 전략투자를 집행·관리할 전담 거버넌스를 만들고, 이를 통해 한미 전략투자 펀드를 조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은 실제로 공적자금과 국가 신용을 동원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다만 운용 과정에서 보증·대출·채권 발행 등 다양한 형태의 공적 리스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미국은 행정명령으로 움직이는데, 한국은 왜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미국 대통령은 행정부 권한을 활용해 관세 조치를 빠르게 집행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의회 견제는 사후적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한국은 행정 집행을 위한 장치가 대부분 법률과 예산에 연계되어 있다. 즉, 정책이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과 국회의 예산·입법 권한이 만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행 법안이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구조로 설계되기 때문에 국회 통제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헌정 질서의 요구가 된다.
실제로 정책 이행을 위해 법률과 예산이 필요해지는 순간 국회는 비준이든 이행 입법이든 방식만 다를 뿐 필연적으로 관여하게 된다. 결국 핵심은 비준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한국이 약속한 패키지를 국내법 절차 속에서 어떻게 실현 가능한 형태로 만들 것인가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현실적으로 국회의 비준 동의보다는 이행 특별법 중심의 대안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즉, 이행 특별법을 단일법 형태로 정리해 신속히 통과시키고, 그 안에 국회 통제 장치를 촘촘히 심는 방식이다.
특별법은 투자 집행의 거버넌스를 명확히 하고, 재원 조달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며, 국회 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
즉, 국회가 일정한 수준의 동의·승인 결의를 통해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정부가 상시 보고하도록 만드는 절충 모델이다. 승인 결의와 보고 의무는 속도를 확보하면서도 국회의 체면과 통제권을 살리는 장치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국회가 투자 의사결정, 재정 리스크, 수익배분 원칙을 공개적 통제 구조 속에 넣는 것이다.
이제 신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취해야 할 첫번째 절차는 미국에 관세 유지 요청을 하고 동시에 앞으로의 국내 일정을 제시하는 것이다. 관세 25% 재인상을 즉각 철회하거나 최소한 적용을 유예하라고 요구하고, 그와 동시에 한국이 국내 절차를 어떤 일정으로 처리할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둘째는 고위급 투트랙 협상이다. 관세는 통상 라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번 사안은 관세라는 통상 수단으로 투자와 재정을 요구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산업·통상 라인과 재무 라인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한국은 미국이 말하는 투자의 정의를 분명히 해야 하고, 한국이 감당 가능한 재정·금융 수단의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는 국내 정치의 병목 제거다. 정부와 국회는 여야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안을 설계해야 한다. 합의안은 정부보증 한도를 명확히 하고, 투자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며, 국회 보고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동시에 산업계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법 통과 이전에도 가능한 준비 조치를 선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결국 이번 사안의 본질은 한국이 국내 민주주의 절차 속에서 얼마나 신속하고 신뢰가능한 방식으로 이행 체계를 구축하느냐다. 특별법과 국회 승인 결의 같은 제도적 대안을 통해 속도와 통제를 동시에 확보한다면, 관세 압박은 단기적 충격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국내 절차가 계속 표류한다면 관세는 막대한 비용으로 돌아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