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가전·구독·AI 전환으로 사업모델 고도화
북미 1위·신흥시장 공략…글로벌 전략 가속

LG전자가 연말 인사를 통해 생활가전(HS) 사업을 이끌어 온 류재철<사진> 사장을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선임했다. 금성사 가전연구소 출신 정통 ‘기술통’으로, 연구개발(R&D)과 사업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생활가전에서 축적한 실행력과 혁신 경험을 전사로 확산시켜 본원적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인사로 풀이된다.
27일 LG전자에 따르면 류재철 신임 CEO는 1989년 금성사 가전연구소에 입사한 이후 절반 이상을 가전 R&D 분야에 몸담았다. 이후 사업으로 보폭을 넓혀 기술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제품 전략과 고객 경험 혁신에 집중해 왔다. 2021년부터는 LG전자의 주력 캐시카우인 생활가전 사업을 총괄하며 글로벌 1위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레드오션으로 꼽히는 글로벌 가전 시장 속에서도 류 사장이 H&A(현 HS)사업본부장을 맡은 지난 3년간 LG전자 생활가전 사업의 매출 연평균 성장률은 7%를 기록했다. 최대 프리미엄 시장인 북미에서도 성과가 뚜렷하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 조사에 따르면 LG전자는 미국 주요 6개 생활가전 품목 매출 기준 점유율 21.8%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소비자 매체 컨슈머리포트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가전 브랜드’에서는 종합가전 업체 가운데 6년 연속 1위를 차지했으며, JD파워 소비자 만족도 조사에서는 냉장고·건조기·전자레인지 등 4개 부문에서 정상에 올랐다.
류 사장의 경영 키워드는 ‘문제 드러내기’와 ‘강한 실행력’이다. 문제를 감추기보다 전면에 드러내는 문화가 경쟁력의 출발점이라는 철학 아래 구매·제조를 넘어 전 밸류체인으로 혁신 활동을 확산시켰다. 올해 HS사업본부에서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문제 드러내기 콘테스트’가 대표 사례다. 수천 건에 달하는 현장 제안과 개선 과제는 실제 공정, 원가, 품질 경쟁력 강화로 연결되고 있다.
매년 리더급 임원을 모아 여는 ‘GIB(Go Into Battle)’ 워크숍도 그의 조직 운영 방식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마치 전장에 나서는 장수의 자세로 사업에 임할 것을 주문하며, 공개적인 반성과 강한 목표 설정을 통해 실행력을 끌어올려 왔다.
류 사장은 기술과 고객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도 주목받아 왔다. 대표 사례가 ‘UP가전’과 가전 구독 사업이다. UP가전은 제품 구매 후에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모델로, 2022년 국내 도입 이후 북미·유럽 등으로 확산됐다. 글로벌 누적 업그레이드 횟수는 2000만 건을 돌파했다. 가전 구독 사업 역시 성장성 부문으로 자리 잡았다. 재작년 매출 1조 원을 넘긴 데 이어, 올해 3분기 기준 누적 매출은 2조 원에 육박한다.
사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력도 두드러진다. 미국 통상정책 변화와 관세 리스크 속에서는 ‘스윙 생산 체제’를 통해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유연하게 운영하며 실적 방어와 성장을 동시에 달성했다. 미국 관세 영향에도 불구하고 생활가전 사업의 3분기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증가했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공략을 위해 인도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시티, 브라질 파라나주에 신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들 거점은 현지 맞춤형 제품을 적시에 공급하는 동시에 남아시아, 중남미 등 인접 시장까지 아우르는 전략 기지로 활용될 예정이다.
류재철 CEO 내정자는 AI 전환에서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는 품질·원가·개발속도 등 가전의 핵심 경쟁력을 AI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 AX(인공지능 전환)를 강하게 추진해 왔다. 생활가전 R&D 조직에는 오픈AI 기반 ‘챗GPT 엔터프라이즈’를 활용한 추론형 AI를 사내 최초로 도입했다. 실제 실험 없이 다양한 변수를 시뮬레이션해 R&D 기간과 개발 비용을 줄이는 방식이다.
생성형 AI 기반 데이터 분석 시스템 ‘찾다(CHATDA)’도 대표 성과다. 글로벌 고객 사용 데이터를 AI와의 대화 방식으로 분석해 제품 개발에 활용하는 시스템으로, 데이터 분석 시간을 기존 3~5일에서 최대 30분 이내로 단축했다. 브라질 시장에서 세탁 빈도와 패턴 분석을 통해 ‘소량 급속 코스’ UX를 전진 배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LG전자 관계자는 "류재철 신임 CEO 체제 아래 생활가전에서 입증된 실행력과 혁신 경험을 전사로 확산해 AI·구독·플랫폼 기반 사업모델 전환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