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층 아파트 창문마다 삐죽이 펼쳐진 긴 빨랫대와 빨래걸이가 도시의 을씨년스러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추억 속에 간직한 상하이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상하이 시내에서는 현금이나 카드 거래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길거리의 걸인도 QR코드를 내밀고, 예원의 성황당에서도 모두 QR로 돈을 받고 있었다. 며칠 머물지는 않았지만, 화폐경제에서 QR경제로 단숨에 순간이동한 듯한 인상이었다. 한국이 신용카드를 중심으로 한 ‘크레딧경제’라면, 상해는 이미 QR코드가 신뢰의 자산이자 거래 단위로 자리 잡은 ‘QR경제’로 변화해 있었다.
알리페이 네트워크는 이제 규모와 장소, 시간을 초월해 움직이는 신뢰경제의 아이콘이 된 듯했다. 스타벅스보다 더 많은 매장을 보유한 루이싱(Luckin) 커피와 우버보다 더 다양하고 편리한 디디(DiDi) 차량 서비스는 부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특히 차량 서비스를 이중으로 신청해 이동 중에 고객센터와의 서비스 확인 등을 할 때에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서비스 플랫폼 수준을 느꼈다. 밤늦게까지 운영되는 다양한 마사지 프랜차이즈 비즈니스 역시 핸드폰이 곧 돈이자 서비스의 매개이며, 동시에 시장 참여자의 아이디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린치핀(linchpin)’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제 중국은 제품 경쟁력뿐 아니라 서비스 네트워크와 시스템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글로벌 톱 수준인 것을 체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제 우리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념도 들었다. 중국이 제조 경쟁력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하고, 서비스 플랫폼 내지 네트워크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한편으로 호텔 복도에 쌓여있는 배달음식 쓰레기, 여전히 거리 곳곳에서 들려오는 거침없는 큰 목소리와 무심한 태도 속에서는 중국 사람의 서비스 마인드나 서비스 터치의 미흡함도 느껴졌다.
중국 상하이 방문을 돌이켜 보니 서비스 분야에서 하이테크(High-tech) 못지않게 중요한 하이터치(High-touch)는 아직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듯했다. 서비스 경쟁력은 서비스 네트워크나 플랫폼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사람의 하이터치나 세심한 배려, 즉 소프트파워가 함께 강하게 작동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전환과 데이터경제 시대로 접어들면서도 여전히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서비스 경쟁력은 다름 아닌 창의력과 메타인지력 그리고 넥서스 접합능력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있고 우리가 가진 비교우위를 잘 활용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중국이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준비하고 정교한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하더라도, 사람의 마음과 오감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서비스 콘텐츠나 하이터치 등 소프트파워는 우리보다 상당히 부족하다. 이제 1만 달러를 넘어선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함께 15억 인구의 중국은 새로운 서비스 소비시장으로 세계 중심 무대에 부상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중국에 비견되는 세계적 제조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 서비스 하드웨어와 소프트파워까지 더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제 중국 서비스 시장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마음껏 펼쳐야 할 것이다. 지역내총생산(RGDP) 3만 달러가 넘는 중국의 프리미엄 소비시장을 우리가 제일 잘 파고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 본다.
이제는 중국을 단순한 경쟁상대로 보기보다, 우리가 서비스 산업의 공급자이자 창의적 파트너로서 새롭게 접근해야 할 때이다. 중국 제품이든 한국 제품이든, 최고 수준의 제품 경쟁력과 서비스 하드웨어 그리고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중국 시장을 공략해야 할 것이다. 그들이 더욱 발전하여 서비스 분야에서 소프트파워와 콘텐츠를 충분히 축적하기 전에, 우리가 보유한 서비스 창의력과 메타인지력, 그리고 서비스의 콘텐츠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국 서비스 시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