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딱ㆍ영포티"⋯소득 불평등이 키운 '뒤틀린 시선'[공존의 붕괴, 양극화 시대③]

입력 2025-10-1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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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는 더 이상 경제의 언어가 아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서 삶의 간극이 벌어지며 불평등은 제도의 균열로 번지고 있다.
정치의 언어는 타협이 아닌 대립으로, 경제의 온도는 계층에 따라 극단으로 갈라졌다. 부와 일자리, 교육과 기회가 양극단으로 치닫자 중산층은 붕괴되고 청년 세대는 계층 이동의 희망을 잃었다. 공존의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다. 이념보다 감정이 정치의 기준이 되고 사회는 협력 대신 불신으로 굳어갔다.
최근 방한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주의 안에서도 최소한의 공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역시 ‘한국의 부의 집중이 민주주의 지속 가능성을 흔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양극화는 이제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체제의 문제다. 성장과 신뢰, 민주주의의 토대를 동시에 흔드는 시대의 균열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본지는 그 균열의 원인을 진단하고 다시 공존의 질서를 세우기 위한 해법을 모색한다.

60대 '틀딱'서 50대 '꼰대'·40대 '영포티'로
박탈감 늘자 혐오 대상 전방위적으로 확대
성별 갈등에도 소득 격차 영향 미치는 듯
"AI 발전으로 혐오·비하 표현 심화 가능성"
성인지 감수성·세대 형평성 갖춘 정책 필요

▲퍼플렉시티가 세대 갈등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생성했다. (임유진 기자·퍼플렉시티)
▲퍼플렉시티가 세대 갈등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생성했다. (임유진 기자·퍼플렉시티)

#40대 직장인 오 모(40)씨는 지난 주말 백화점에서 ‘우영미’ 브랜드 옷을 구입하다가‘영포티(Young+Forty)’라는 수군거림을 들었다. 그는 “좋아하는 브랜드를 샀을 뿐인데 ‘젊어 보이려는 40대’로 조롱받았다”면서 “각자 입고 싶은 옷을 입으면 될 일 아니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영포티’라는 말은 중년 세대에 대한 새 혐오 코드로 확산 중이다.

세대·성별 간 갈등이 한국 사회의 새로운 균열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한남’ ‘한녀’(한국 남성,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혐오적 용어)와 같은 성별 혐오 표현이 일상화된 데 이어 ‘영포티’ ‘틀딱(노인을 뜻하는 신조어)’ 등 세대 간 조롱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자산·소득 격차와 공정 인식의 왜곡이 갈등을 증폭시키는 한편 세대·성별 간 분절이 사회 전반의 불안정성을 확대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가구주의 평균 자산은 5억8212만 원으로 전년 대비 3.7% 늘었다. 반면 20대 이하 가구주는 1억4918만 원으로 증가율이 1.7%에 그쳤다. 고용노동부 자료에서도 45~49세 월평균 급여(455만1000원)는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았다.

자산과 소득의 격차가 세대 간 상대적 박탈감을 부추기며 혐오를 낳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대는 기성세대가 불공정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했다고 인식해 분노가 외부 집단으로 표출되고 있다”며 “60대 틀딱, 50대 꼰대를 넘어 40대 영포티까지 혐오 표현이 확산되는 것은 분노가 점점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성별 간 불평등도 갈등의 불씨로 작용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남성의 월평균 임금은 439만8000원, 여성은 285만1000원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54% 많았다.

이같은 양극화는 국가 경제와 개인의 행복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사회적으로 다른 집단에 대한 신뢰가 낮은 국가는 많은 기회 비용의 발생으로 경제적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데 발목잡힐 수 있다”면서 “개인의 측면에서도 다른 집단에게 공격받게 되면 타인으로부터 지지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행복감이 확 떨어지고, 결국에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라는 생각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소득과 기회의 격차가 장기적으로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키고 세대·성별 간 경쟁을 ‘제로섬 게임’으로 만드는 셈이다.

갈등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형태로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과학 저널 ‘네이처’ 10월 9일 자에 실린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포함한 공동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공지능(AI)이 기존 사회적 고정관념과 선입견, 편견을 강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에 표현된 세대·성별 갈등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고정관념을 왜곡하고 확대 재생산할수록 해당 집단의 개인들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를 이끈 더글러스 길보 스탠퍼드대 교수는 “나이와 성별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 AI 모델에 의해 습득될 뿐만 아니라 AI에 의해 적극적으로 재현되는 만큼 지금과 같은 초기에 문제점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양극화 해법의 핵심은 ‘감수성 있는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정우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을 정책적으로 해결한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라면서도 “여러 젠더갈등의 문제를 성인지감수성으로 정책 손질하고 있는 것처럼 세대 형평성의 관점으로 세대 간 격차가 벌어지지 않고, 한 세대가 부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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