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 70년 체제 완전 무력화…각국 통상 블록화에 한국경제 시계 제로

입력 2025-10-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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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업계, EU 50% 관세로 ‘삼중고’ 직면
車도 유사한 조치 가능성 배제할 수 없어
중국 희토류 수출통제에 국내 반도체·배터리 비상
대통령실, 산업별 맞춤형 대응책 마련 나서

▲한국 평택항에 철강 제품들이 놓여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한국 평택항에 철강 제품들이 놓여 있다. (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보호무역주의 물결이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로 번지고 있다. 1948년 발효한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이후 지금까지 약 70년간 글로벌 자유무역을 지탱해왔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가 사실상 무력해졌다.

9일 영국 가디언과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관세, 유럽은 무관세 쿼터 축소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중국은 희토류 수출통제 등으로 보호무역 장벽을 높이면서 블록 중심으로 무역 체제가 굳혀지고 있다. 이에 한국 기업과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도 짙어지게 됐다.

EU 집행위원회가 이번 주 글로벌 철강 수입 쿼터를 종전보다 47% 축소하고 쿼터 이외 수입 물량에 대한 관세는 현재의 25%에서 50%로 인상하는 유럽 철강업 보호 대책을 예고하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의 철강 관세와 중국발 저가 철강 공급에 더해 EU 관세 리스크까지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이 ‘삼중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새 조치는 내년 6월 종료될 철강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대체하는 조치다. 세이프가드는 EU가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에 대응해 도입한 제도다. 국가별 쿼터 내 물량에는 무관세를 적용하고 초과분에는 25%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WTO 규정에 따라 해당 제도가 종료되면서 EU가 자국의 철강업 보호를 위해 후속 조치를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EU 집행위는 “현실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불가능”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현실화하면 한국 철강업계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EU 철강 수출액은 44억8000만 달러(약 6조2800억 원)로, 단일국가 기준 1위인 미국(43억4700만 달러)보다 많다. 수입 쿼터가 줄어들면 한국 기업들의 수출 물량이 제한되고 관세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EU와의 FTA로 무관세를 적용받는 한국산 자동차에도 자국 산업 보호를 이유로 철강과 유사한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현대자동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자동차 업계는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때 유럽·일본(15%)보다 높은 25%의 고율 관세를 적용받고 있다. 이로 인해 올해 들어서만 조 단위의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게 됐다.

중국이 희토류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도 우리 기업에는 악재다. 희토류는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국내 핵심 산업 부품 제조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료다.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용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 등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이들 소재의 공급 제한은 곧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이날 발표한 새로운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에서 14㎚(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이하 시스템반도체나 256층 이상의 메모리반도체, 이들 반도체의 제조·테스트 장비에 쓰일 희토류 수출 신청과 잠재적으로 군사 용도를 갖고 있는 AI 연구개발용 희토류 수출 신청은 개별 심사하기로 했다.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도 예외가 아니다. 전기차 구동모터에는 네오디뮴·프라세오디뮴 자석이 필수이며, 중국은 이 소재의 글로벌 생산량 90% 이상을 차지한다. 또 배터리에 필수적인 리튬, 니켈, 망간 등 정제 기술은 중국이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EU의 CBAM,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현지 조달 요건, 여기에 중국의 원자재 통제까지 겹치면서 한국 배터리 3사의 글로벌 공급망은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은 북미와 호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비(非)중국’ 광물 공급망을 확대 중이지만, 단기간 내 완전한 ‘탈중국화’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국내 글로벌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방위산업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희토류는 유도무기·전투기·잠수함·레이더 등 첨단 무기체계의 필수 소재다. 특히 AESA(능동위상배열) 레이더, 전자전(EW) 시스템, 전투기 스텔스 코팅, 함정용 전력 추진 장치에는 고내열·고출력 자석이 반드시 들어간다.

정부는 보호무역 기조 확산에 맞서 산업별 맞춤형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특히 대통령실이 통상·외교 라인을 직접 조율하며 협상 전략을 총괄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이날 대통령실은 한미 관세협상 후속 대책 마련을 위해 강훈식 비서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합동 회의를 열었다. 회의에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과 김용범 정책실장,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이번 회의는 4일(현지시간) 김 장관이 미국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나 협상을 진행한 데 따른 후속 논의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대통령실은 5일에도 정책실장·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구 부총리와 조현 외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등이 참석하는 통상회의를 열으며, 7일에는 대통령실 주도로 실무협상단 회의를 개최했다.

대통령실은 이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과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정상회담 전까지 한미 간 핵심 쟁점의 접점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협상 교착 장기화로 인한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고, 정상회담을 계기로 실질적 성과를 도출한다는 목표에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대통령실과 관계부처는 지속적으로 협의에 나서고 있다”며 “국익에 최우선을 두고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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