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가는 지난달부터 소용돌이치고 있다. 관세가 적용되면서 예견됐던 수순이다. 7월까지 미 소비자물가는 전년대비 2.7% 올랐다. 5개월 만에 가장 빠른 상승률이다. 이미 중앙은행이 정해 놓은 가이드라인 2%를 훌쩍 넘어섰다. 기업들이 관세부담을 소비자들에게 떠넘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개별 국가에 대해 부과한 관세는 지난 7일부터 발효됐기 때문에 7월 물가에는 반영되지도 않은 상태다.
물가 상승을 주도한 품목은 중국, 인도, 베트남 등 관세가 부과된 국가에서 수입하는 가구, 가전제품, 의류, 신발, 항공료 등. 자동차 가격은 메이커들이 관세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걸 최대한 자제해왔으나 임계점에 다다랐다. 중고차와 트럭 가격은 이미 4.8% 올랐다. 특히 한국, 일본산 등 수입차 가격은 관세 상승분만큼을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전가할 수밖에 없다.
연내 완성차와 부품에 부과되는 관세는 최고 27.5%. 차값이 이 정도 오르면 미국 소비자 상당수는 신차 구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메이커들이 당분간은 비용절감 등을 통해 수익성 감소를 보전하려 하겠지만 ‘물속에서 숨 참기’나 다름없다. 오래가지 못한다는 얘기다.
조만간 ‘관세형 인플레이션’이 경제를 강타, 물가폭등이 예상되는데도 트럼프 행정부의 독단은 여전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진한 고용시장 통계를 발표한 에리카 매캔타퍼 노동통계국장을 자신에게 정치적 위해를 가하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다며 전격 해임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에게도 “당장 금리를 내리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다. 백악관 참모들은 트럼프 엄호에 바쁘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은 “관세와 물가는 무관하다”며 추임새를 넣고 있다.
말을 듣지 않는 기업은 물론 대학 등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예산삭감 등 조치를 취하는 트럼프의 ‘묻지마 행정’에 대해 경제 전문가들과 기업인들은 매우 비판적이다. 바이든 행정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재러드 번스타인은 트럼프 관세정책이 물가는 오르면서 성장은 둔화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성장률은 지난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정체상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빨리 관세전쟁을 끝내는 것만이 상황이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들은 보다 현실적인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나 의회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기업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는 데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공급망을 재구축하고, 트럭을 총동원해 멕시코 국경을 통해 물량 확보에 주력하는 식이다. 부득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지만 너무 급하게 올릴 경우 소비자가 이탈하면 시장점유율을 잃을 우려가 크기 때문에 일단 물량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것이다. 아마존처럼 관세를 즉각 소비자들에게 떠넘겼다간 트럼프에게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은밀하게 사재기를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정책에 엇나가는 기업에 대해 가차 없이 보복 조치를 취하는 트럼프를 기업들은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코스트코나 트레이더 조 같은 대형 소매점에는 요즘 평일에도 고객들로 북적인다. 국별, 품목별 관세가 확정되면 15~30%의 물가 폭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가장 쉽고 빠른 사재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도 공급망을 재편하고, 투자를 조정함으로써 다가올 폭풍에 대비하고 있다. 문제는 그 파고가 얼마나 험난할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Wanseob.kong@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