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해외 건설업계가 중동발 악재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상반기 해외건설 수주가 15% 가까이 감소한 데 이어, 이란과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이 격화되면서 중동 수주 급감과 함께 하반기 수주 위축, 원자재 수급 불안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국토교통부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 집계에 따르면 올해 5월까지의 한국 건설사의 해외건설 수주액은 116억2000만 달러로 작년 동기(136억6000만 달러) 대비 약 15% 감소했다. 이는 정부가 올해 목표로 제시한 500억 달러의 23.2%에 불과하다.
수주 감소는 전반적인 글로벌 경기 둔화와 함께 주요 수주처인 중동 수주 급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올해 5월까지 중동 수주는 56억4000만 달러로 작년 동기(99억8000만 달러)보다 43% 줄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수주는 81억5000만 달러에서 26억8000만 달러로 67.9%나 감소해 중동 부진을 대표했다.
중동 수주 감소의 배경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재정 부담이 자리 잡고 있다. 예산 여력이 줄어들면서 네옴시티 등 초대형 프로젝트 발주 규모가 조정됐고 사업 일정도 다소 늦춰지고 있어서다.
여기에 최근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까지 빚어지면서 하반기 중동 건설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신규 발주 역시 위축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있어 글로벌 발주시장 전반의 흐름이 악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손태승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실장은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과 러시아 등이 참전하면서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이에 따라 신규발주는 중단되는 등 발주 시장 상황이 나빠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22일 이란 의회가 미국의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의결하면서, 국제 유가와 중동 재정 여건 모두에 비상이 걸렸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5%, LNG의 약 20%가 지나가는 전략 요충지다.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국제 유가 급등과 글로벌 물류망 차질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란의 봉쇄 시사 직후 국제 유가는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시각 23일 오후 3시 기준, 7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3.84달러로 0.46% 상승했고 두바이유는 0.5% 오른 71.20달러, 브렌트유 8월 인도분은 장중 81달러까지 올랐다가 76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손태승 실장은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플레이션, 물류·조달 비용 증가 등으로 해외 건설업 경영 여건이 갈수록 악화될 것”이라며 “(건설사들은) 시행 중인 프로젝트의 경우 불가항력 관련 조항을 꼼꼼히 검토하고 계약 단계 사업은 취소나 일정 변경 가능성까지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실제로 이뤄질 경우 봉쇄 기간과 강도가 핵심 변수”라며 “장기화되고 고강도 양상일 경우 유가가 급등하고 이는 국내 건설 공사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단기적으로는 석유 비축분이 있어 국내 건설사에 즉각적인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