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사망] '하나회 수장' 전두환, 그는 누구인가

입력 2021-11-23 12:28 수정 2021-11-23 18:00

박정희 비호 아래 노태우와 '하나회'로 승승장구
10.26 이후 실권 잡고 12.12로 군부 장악 후 쿠데타
간접선거로 11·12대 대통령 당선…'3S 정책'으로 선회
6.29 선언 후 물러났지만 퇴임 후 계속해서 논란

23일 향년 90세로 사망한 전 대통령 전두환 씨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1931년 1월 18일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에서 태어난 전 씨는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했다. 그가 주목을 받았던 시점은 박정희 정권이 등장했던 1961년.

5.16 군사 정변 당시 육사 생도들을 동원해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벌였던 전 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에 임명됐다. 이후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하나회'라는 군대 내 사조직을 형성했고 박 전 대통령의 비호 아래 명성을 떨쳤다.

1979년 3월에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당시 중앙정보부라는 거대 권력에 반해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비밀리에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군사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수사하는 등 보이지 않는 실세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전 씨는 1979년 10·26사태가 발생하자 핵심 권력으로 떠올랐다. 그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을 체포하는 데에 앞장섰고 계엄법을 근거로 합동수사본부장을 자처했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 씨는 박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생긴 공백기를 활용해 하나회와 함께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군을 장악했다.

이듬해 5월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비상계엄 확대 조치를 진행하고 헌정을 차지했다. 이에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발생하자 군사를 동원해 시민들을 진압했고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를 신설해 실권을 갖게 됐다.

전 씨는 최규하 당시 대통령을 반강제로 사임시키고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유신헌법의 산물로 간접선거를 통해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후 새 헌법을 통해 대통령제를 7년 단임제로 바꾸고 1981년에는 12대 대통령이 됐다.

전 씨는야간통행 금지 조치 해제와 학원 두발·복장 자율화 등을 시행하며 정권에 반발하는 세력에 대한 유화 정책에 주력했다. 특히 스크린(Screen)·스포츠(Sports)·섹스(Sex)를 일컫는 '3S 정책'은 전 씨가 펼친 대표적인 우민화(愚民化) 정책이었다.

7년간 대통령으로서 임기를 이어가던 전 씨는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맞닥뜨렸다. 이후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4.13 호헌조치를 통해 개헌논의를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오히려 역풍을 맞고 6월 민주 항쟁으로 이어졌다. 당시 여당의 대선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은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진행했고 전 씨는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게 됐다.

전 씨는 퇴임 이후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여론의 구속 요구에 백담사로 들어가 은둔하기도 했다. 이후 1995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노 전 대통령과 함께 구속됐다. 혐의는 반란수괴죄, 반란모의참여, 살인, 뇌물수수 등 13가지. 그는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했지만, 1997년 대선에서 사면 여론이 형성된 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됐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 대통령 전두환 씨가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 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제11·12대 대통령을 지낸 전 대통령 전두환 씨가 23일 사망했다. 사진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내란 및 내란 목적 살인, 뇌물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두환(오른쪽) 씨와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린 선고공판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전 씨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됐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안전가옥에서 전임 대통령 경호를 받으며 골프를 치는 등 호화생활을 이어갔던 전 씨는 2205억 원의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다. 특히 “예금자산이 29만 원밖에 없다”는 발언은 세간에 화제가 됐다. 2003년에는 언론 인터뷰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을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전 씨는 최근까지도 회고록을 통한 고 조비오 신부 명예훼손 등으로 피소가 돼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는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이라며 참석하지 않았지만, 골프를 치고 의사소통을 명확하게 하는 모습이 포착돼 다시 한번 비판을 받았다.

가장 최근인 8월에는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10월에는 70년 가까이 함께한 동반자인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고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 씨는 이날 숨을 거두기 전까지 군부독재나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에 관해 단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의 사망으로 5.18 형사재판은 중단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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