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유러피언 드림] 45. EU 가입 20주년 동구권의 딜레마

유럽의 ‘빅뱅’ 경제·안보 일거양득
마지막 ‘우크라 가입’ 해법 주목돼

2007년 4월 슬로바키아의 질리나(ZILINA) 시에서 기아자동차 공장이 준공됐다. 이 공장은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북동쪽으로 200km 떨어진 곳에 있고 기아차 최초의 유럽 내 생산시설이다.

기아는 2004년 봄에 10억 유로, 약 1조4500억 원 정도를 투자해 연산 30만 대 규모의 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그해 5월 1일 슬로바키아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 됐다. EU 회원국 간에는 아무런 장벽이 없이 상품과 서비스, 노동과 자본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기아차는 저렴한 인건비에 인프라가 비교적 갖춰진 이곳에 공장을 지었다.

기아차의 투자는 성공했다. 2021년에 말, 이곳의 누적 생산량이 400만 대를 돌파했다. 슬로바키아처럼 과거 공산권에 속했다가 시장경제로 전환한 후 EU 회원국이 된 중동부 유럽국가들은 최근 EU 가입 20주년을 축하했다. EU 가입이 경제와 안보에서 이들에게 큰 이득을 안겨줬다.

2004년 5월 1일 폴란드와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3국(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지중해의 사이프러스와 몰타가 EU 회원국이 됐다. 앞의 8개 나라 모두 냉전 시대 소련의 압제에 신음하다 1990년대 초 냉전이 붕괴하면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을 시작했다. 당시 EU는 이들에게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면서 EU 가입을 당근으로 정치와 경제 개혁을 지속하도록 지원했다.

EU, 동구권 확대는 성공적

EU에 가입하려면 민주주의와 법치 존중, 시장경제, 소수인 존중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EU는 10년 넘게 중동부 국가들의 개혁을 위 조건에 맞게 세부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지원했고 이 조건이 충족되자 지중해의 2개 나라를 포함해 10개국을 일시에 회원으로 수용했다. EU의 동구권 확대로 회원국은 15개국에서 25개국으로 늘었다. 유럽 통합사에서 10개 나라가 한꺼번에 회원국이 된 적이 없었기에 EU의 동구권 확대는 보통 ‘빅뱅’으로 불린다.

이 확대로 ‘유럽’은 하나가 됐다. 2차대전 후 유럽은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인위적으로 분단됐다. 1980년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시작된 시민들의 비폭력 혁명으로 동유럽 국가들은 다시 ‘유럽’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러시아와 서유럽에 낀 이들이 체제 안정을 이루면서 EU에 가입해 안보도 개선됐다.

중동부 유럽국가들이 회원국이 된 후 EU와의 역내 교역이 급증했다. 슬로바키아 기아차 공장의 예를 들었듯이 여기서 생산된 차 대다수가 EU의 다른 회원국으로 수출된다.

또 이들이 EU 회원국이 되면서 국가 리스크가 줄어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늘었다. 폴란드 경제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22년까지 중동부 유럽 8개국으로의 FDI는 총 63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폴란드로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2790억 달러로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폴란드에 우수한 인력이 많고 산업 입지가 괜찮아 이곳으로 외국인 직접투자가 급증했다.

2004년부터 20년간 ‘빅뱅’ 확대 때 가입한 10개국의 1인당 GDP는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2만 달러에서 거의 2배 증가했다. 그만큼 신규 회원국의 따라잡기가 성공했다.

▲샤를 미셸(왼쪽)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지난해 11월 21일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오른쪽)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EU 가입 문제를 논의한 뒤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헝가리, EU내 ‘가장 약한 고리’

빅뱅 확대는 이처럼 경제와 안보에서 성공적이다. 하지만 헝가리의 법치주의 위반은 계속해서 EU의 골칫거리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지난 5일부터 6일간 5년 만에 첫 유럽 순방에 나섰다. 그는 프랑스에 이어 세르비아, 헝가리를 방문했다. 헝가리의 경우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지만 가장 친러시아적이고 친중국적인 외교 행보를 보여왔다. 시 주석은 EU와 나토 내 가장 약한 고리인 헝가리를 방문해 미국과 EU 중심의 대중국 강경정책에 균열을 내려 했다.

오르반 빅토르는 2010년부터 총리로 재직 중이며 보수 포퓰리스트 정당 피데스(Fidesz·시민동맹)의 당수다. 이 당은 선거에서 3분의 2 의석을 차지해 총리가 원하는 대로 국정을 운영해왔다. 집권 후 그는 개헌을 단행,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로 집권당에 유리한 선거법을 제정했다. 판사 임명을 행정부의 통제 아래 뒀다. 또 친정부적 기업들로 하여금 언론사를 인수하도록 해, 독립 언론을 통제해왔다.

EU 집행위원회는 3권분립에 어긋나는 이런 법치주의 위반 시정을 요구했고 시정과 EU 예산 지원을 연계했다. 헝가리는 마지못해 일부를 시정했으나 EU가 보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EU의 우크라이나 지원 500억 유로, 약 70조 원도 헝가리의 반대로 몇 달을 질질 끈 후 지난 2월에야 겨우 통과됐다.

예산혜택국 폴란드 반대 가능성

빅뱅 확대의 성공에도 우크라이나는 EU에게 매우 어려운 과제다. 전쟁과 휴전 및 평화체제의 성립, 우크라이나의 경제재건 그리고 EU 가입을 상호연계해 이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발발 한 달 만인 2022년 3월에 EU 가입을 신청했고, 지난해 12월 가입 협상을 개시하기로 EU 수반들이 결정했다. 역사상 최단기간 안에 가입 협상이 시작됐으나 넘어야 할 산이 높다.

우크라이나는 부정부패가 심각하다. 국제투명성기구의 2022년 부패인식지수(CPI) 순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116위, 유럽에서 러시아(137위) 다음으로 부정부패가 심각했다. 전쟁 중에도 국방장관과 병무청장 등이 부패 혐의로 교체됐다.

EU 예산개혁도 쉽지 않다(본지 2023년 8월 31일자 22면 참조). 현재 EU예산의 3분의 2가 회원국 농민과 낙후지역 지원에 지출된다. 폴란드는 농민 비중이 8.4%로 EU 평균의 2배에 달하고 낙후된 지역이 많아 EU 납부액보다 2.5배나 더 많은 지원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의 농민 비중은 14%로 폴란드보다 1.7배 높고 낙후지역도 훨씬 많다.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폴란드는 EU 예산 순혜택국에서 순납부국으로 바뀐다. 예산정책 변경은 회원국 만장일치가 필요하기에 폴란드가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EU는 동구권 확대 20주년을 되돌아보며 더 큰 과제 우크라이나를 안고 있다. 빅뱅 확대의 성과를 바탕으로 EU가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차분하게 지켜보자.

대구대 교수(국제정치학)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