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조수석? 누가 조수인가요

입력 2019-12-03 14:51 수정 2019-12-04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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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부 차장

언제부터인지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운전석과 나란히 자리한 옆자리를 ‘조수석’으로 불렀습니다.

부지런히 검색을 반복해보니 '조수석'이라는 단어는 우리 화물차 역사와 궤를 함께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한국전쟁 이후 나라 재건에 나선 우리는 미군이 남기고 간 군용 트럭을 개조해 썼습니다.

이때 화물차로 버스를 만들거나, 작은 화물차에 커다란 적재함을 달아 또 다른 화물차로 유용한 것이지요.

가뜩이나 일자리가 없고 살림이 궁핍하던 그 시절, 그나마 밥벌이가 됐던 기술이 ‘운전’이었습니다.

당시 트럭 운전자들은 으레 옆자리에 조수를 태우고 다녔는데요. 짐을 싣거나 내릴 때 일손이 필요했겠고, 후진 때마다 차 뒤쪽으로 달려가 “오라이(All right)~ 오라이”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름 그대로 운전자의 일손을 돕는, 운전자의 옆 자리에 앉아 '보조자'의 역할을 맡았던 게 트럭 조수들이었습니다.

2019년 현재, 이제 더는 트럭 운전자를 돕는 이른바 ‘조수’를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존재하지도 않은 ‘조수’를 위한 ‘조수석’은 우리 주변에 차고 넘쳐납니다.

커오던 시절을 더듬어봤습니다.

십수 년 자동차 기사를 써오면서, 저 역시 상투적으로 ‘조수석’이라는 단어를 남발해 왔습니다.

보편하고 타당해야 하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사여야 한다”는 허울 좋은 ‘핑곗거리’를 쥐고 있었음도 고백합니다.

그럼 운전석과 나란히 자리한 1열 승객 좌석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가장 적절한 대안은 ‘동반석’ 또는 ‘동승석’입니다.

자동차 회사들 역시 오래전부터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어 하나 바꿔쓰는 것조차 기존의 틀을 깨는 것이라 여기고 있으니까요.

내수시장의 80%를 차지한 현대‧기아차 역시 여전히 ‘조수석’이라는 단어를 사용 중입니다. 신차 매뉴얼과 홈페이지, 광고, 선택사양 리스트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오죽했으면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직원과의 대화를 통해 “현대차가 변했다면 다 변한 것”이라며 변화에 인색한 회사 분위기를 에둘러 전했을까요.

수소전기차를 만들었고 자율주행차를 개발 중이며 하늘을 나는 ‘개인용 비행체’ 시대를 공언했지만, 여전히 옆자리에는 ‘조수’를 태우고 다니는 셈이지요.

반면 의외로 대안을 일찌감치 찾아낸 회사가 바로 한국지엠(GM)입니다.

검색해보니 한국지엠은 꾸준히 조수석 대신, 동반석과 동승석을 시험적으로 사용 중이었습니다. 일부 수입차 브랜드 역시 ‘동반석’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1975년 현대차가 국내 최초의 고유모델 포니를 선보인 지 이제 반세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동안 자동차 산업은 빠른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주도했고, 우리가 뒤따라야 하는 ‘자동차 문화’가 기술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시대에 맞게끔 바꿀 수 있어야 커다란 흐름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존중받아야 할 시대에 “조수석”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최근 기아차의 중형 세단 K5가 3세대로 거듭났습니다.

새 모델은 명령어 인식 시스템을 새로 선보였는데요. 예컨대 “운전석 창문 올려줘”라고 말하면 이를 자동차가 인지하고 창문을 올려주는 방식이지요. 앞으로 이런 기술은 새로 등장하는 현대ㆍ기아차 전체로 확산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등장할 차들이 운전자의 옆자리를 어떤 단어로 인식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의미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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