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論]주택보유 인식 바꿔야 전세난 풀린다 -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13-09-0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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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요즈음 유사 이래 최악의 전세난을 겪고 있다. 서울 잠실 엘스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73%를 넘었다고 하니 조금만 더 보태면 집을 살 수 있을 정도다. 전세를 살아야 하는 서민들의 처지가 무척 어려워졌다.

이처럼 전세가격 때문에 아우성들이지만 대책은 마땅치가 않다. 다 읽어 내기도 어려울 만큼 많고 다양한 정부의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 때문에 전세가격이 낮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어떤 물건의 가격이 오를 때 즉각 효과를 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것과 수요를 억제하는 것이다. 전월세 상한제가 첫 번째의 수단이다. 그런데 아무리 엄격히 규제를 하고 싶어도, 새로 세입자를 들이거나 또는 전세를 월세로, 월세를 전세로 전환할 때는 이 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전월세 상한제가 일시적 임대료 폭등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정책을 놓고 여야가 논쟁을 벌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편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이란 쉽게 말해서 전세를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수요자가 줄어드는 만큼 가격은 당연히 떨어지거나 덜 오르게 된다. 매매가격이 오를 때 전가의 보도처럼 써왔던 소위 투기 억제책들은 대부분은 집을 사거나 소유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같은 원리로 전세에 대해서도 전세를 살지 못하게 하거나 또는 주택 매매에 세금을 부과하듯 전세 보증금에 세금을 매긴다면 전세가격은 당장 하락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 어떤 국민도 ‘약자’인 세입자를 규제하는 정책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제 정부가 내놓는 전월세 정책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전세자금 대출 확대 같은 정책은 사실 난센스다. 전세 소비자들의 전세 수요를 부추겨서 전세가격을 오히려 더 높인다. 불난 데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나 할까?

공공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 전세 수요를 주택 보유 수요로 전환시키는 정책은 어느 정도 효과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그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처럼 화끈한 해결책이 없다 보니 성질 급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이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주택 보유 욕구를 인정하고 시장이 공급 확대를 통해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민간에 의한 임대주택이 정상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주택시장은 정부가 임대주택 공급에 나서지 않으면 공급이 늘어날 수 없을 정도로 민간의 임대주택공급 기능이 위축되어 있다. 주택 보유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다.

사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전세난은 수십년의 투기 억제책에 대한 시장의 복수일지 모른다. 거의 모든 정치인과 학자와 시민단체들이 주택 소유를 저주해왔다. 어느 정도 시장을 이해했다고 자부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조차도 ‘주택은 투기 목적이 아닌 거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다. 1가구 1주택을 넘어서는 주택보유가 죄악시되었다는 것은 민간에 의한 임대주택 공급이 죄악시되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1가구 다주택 보유자는 달리 보면 주택 임대업자이자 민간 전세주택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에는 기업형 임대주택, 기업형 전세주택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반인이 아파트 여러 동을 소유하면서 임대사업을 하는 미국과는 천양지차다. 우리나라의 민간 임대시장은 대부분 한두 채를 보유하고 전세를 놓는 아마추어 임대업자 위주로 구성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요즈음처럼 전세수요가 폭발할 때 시장이 적절히 반응하지도 못한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다주택보유를 죄악시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이제 다주택보유자가 주택임대 사업자라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주택임대시장의 정상화는 주택보유에 대한 인식의 정상화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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