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의 터닝포인트] 디트로이트의 종말

입력 2019-05-0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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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가 분기점이 된 것은 맞는데, 사실 제품 전략이 많이 늦었던 것도 있었어요.”

중국 시장 부진을 말하던 기아차 고위 임원은 자조적인 말투로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요즘처럼 SUV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기 전부터, 적절한 제품들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요즘 차 업계에서는 SUV가 효자입니다. 틈새 모델로 취급받던 SUV가 이제 주류로 우뚝 선 셈이지요. 당장 내수만 해도 그렇습니다. 완성차 5사 가운데 늘 꼴찌였던 SUV 전문 메이커 쌍용차가 판매 3위에 올라선 지 오래됐습니다.

특히 대형 SUV 시장이 그렇습니다. 수입차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성이 사라진 데다, 국산차의 품질과 내구성이 이들에 버금가기 시작하면서 시장 상황이 달라진 것입니다.

수익성도 좋아졌습니다. 현대차 1분기 판매는 작년보다 줄었는데요. 그런데도 수익은 오히려 개선됐습니다. “대형 SUV 및 고급차 판매가 늘어난 효과”라는 게 현대차의 분석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대기아차는 “더 다양한 SUV를 개발해 시장에 대응하겠다”는 전략까지 내놨습니다.

자동차업계의 이런 모습은 흡사 1990년대 미국과 닮아 있습니다. 값싼 기름 값 덕에 북미에서는 SUV와 픽업트럭이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포드와 GM, 크라이슬러 등 이른바 미국 ‘빅3’는 철옹성 같은 아성을 쌓기 시작했지요.

특히 포드는 승용차를 개발하던 최고의 ‘브레인’들을 대거 SUV 개발에 투입했습니다. 판매 전략도 SUV와 픽업에 맞췄습니다. 그러는 사이 북미 시장에 진출한 일본차와 한국차가 점진적으로 북미 중형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결국 ‘포드 토러스’로 대변됐던 미국의 중형차 시장은 일본차에 가볍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토러스는 싸구려 품질과 잦은 잔고장 탓에 렌터카나 회사 업무용차로 헐값에 팔리는 신세가 됐습니다. 맹목적으로 SUV에 집중했던 미국 빅3가 무너진 것도 이때였습니다.

뉴욕타임스 자동차 전문기자인 미쉐린 메이너드는 그녀의 저서 ‘디트로이트의 종말(The end of Ditroit)’을 통해 빅3의 몰락을 잔잔하게 풀어냈습니다. 픽업과 SUV에 집중했던 미국 빅3는 결국 고객이 원하는 차를 만들지 못했고, 수익성 높은 SUV와 픽업에만 집중하다 무너진 과정을 적나라하게 비판한 글이었습니다.

여러 전문가와 경제학자가 그 시절 미국 빅3와 작금의 현대기아차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수익성 높은 대형 SUV에 집중하고, 악성 재고로 남아 있는 구형 쏘나타를 싼값에 렌터카 업체에 대량으로 판매하며, 노조에 휘둘리는 모습이 그 당시 포드와 오롯하게 닮아 있다는 겁니다.

사측에는 세계 경제와 정세를 좀 더 정밀하게 예측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경영 판단만큼 중요한 것은 노사의 협력입니다. 특히 노조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격언을 마음에 담아 두기 바랍니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디트로이트의 사례만이라도 연구해 노사가 협력에 나서기를 기대해 봅니다. jun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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