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진의 만년필 이야기] 12. 학생들의 로망은 달라졌지만

입력 2018-03-23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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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시즌이다. 서점의 문구코너에 학생들이 넘쳐나고 참고서가 수북이 쌓여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른들의 새해는 1월부터 시작되지만 학생들의 달력은 3월부터이다. 30년이 훌쩍 지난 내 학생시절과 비교해도 이 풍경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만년필 등을 잘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지금 학생들은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세대는 중학교 때 처음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I am Tom’으로 시작하는 영어 교과서를 장판 종이로 곱게 싸 갖고 다녔고 선생님들은 ABC부터 가르쳤다. 알파벳 필기체가 한 단원(單元)으로 돼 있어 학생들은 만년필이나 잉크를 찍어 쓰는 펜촉을 갖고 다녔다. 알파벳 필기체는 가늘고 굵은 획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굵기가 항상 일정한 볼펜으로는 그렇게 쓸 수 없었다.

당시에도 만년필은 귀해서 갖고 있는 학생은 부러움을 샀다. 가장 부러운 경우는 화살클립이 달린 파커45를 갖고 있는 학생이었다. 소니의 워크맨과 함께 파커45는 당시 학생들의 로망이었다. 파커45가 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은 만년필이 된 것은 어떤 이유일까?

이것에 대한 답을 내려면 1929년 발생한 미국의 대공황(大恐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대공황은 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주었다. 만년필 세계 역시 심각한 위기였다. 파커사(社)의 매출을 보면 1929년 대비 1932년의 매출은 32%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이 모든 면에서 나빴던 것은 아니다. 신기술과 새로운 발상이 적용된 만년필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위와 아래가 살짝 뾰족해지는 유선형 모양의 만년필이 등장했고, 꼭지를 돌려 잉크를 넣는 방식이 나온 것도 이 시기였다. 작고 저렴한 금촉 펜촉이 끼워진 만년필도 꽤 많이 만들어졌다.

▲파커45 만년필.
▲파커45 만년필.
대공황 전까지 만년필은 단순하게 고가는 고품질, 저가는 저품질, 두 가지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공황으로 살림살이가 어려워진 사람들은 싼값에 좋은 물건을 사길 원했고 만년필 회사들 역시 그 심리를 알고 있었다. 1~2.5달러의 저렴한 가격에 금촉이지만 작은 펜촉이 끼워진 만년필들이 이름 있는 회사들을 포함하여 양산(量産)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이 사긴 했지만 품질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진정으로 이 심리에 걸맞은 만년필은 1948년에 나온 파커21이다. 파커21은 끼워진 펜촉이 금이 아니었지만 당시 가장 비싼 만년필 중 하나였던 파커51의 3분의 1 정도 가격인데도 품질은 거의 같았다.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파커21을 구입했고 파커사는 저가시장을 완전 평정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파커사는 파커21의 후속으로 좀 더 완성된 만년필을 내놓는다. 탄창에 총알을 끼우듯 잉크를 넣을 수 있는 카트리지 방식을 채택한 파커45였다. 45라는 이름 역시 유명한 권총 콜트45에서 유래(由來)되었다. 파커45는 21보다 날렵하게 디자인되어 좀 더 현대적이었고, 중학생만 되어도 펜촉을 갈아 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뚜껑은 파커21처럼 밀어 끼우는 방식을 유지했다. 한마디로 학생들이 갖고 싶도록 만들어졌다. 파커 45에 적용된 세 가지 개념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지금 중학생이 된 자녀에게 만년필을 사주고 싶다면, 쉽게 펜촉을 바꿀 수 있는 것, 카트리지 잉크충전 방식, 만년필의 뚜껑을 밀어 끼우는 방식인지 확인하고 지갑을 열면 된다. 만년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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