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의 말] 청와대와 돈: 그 형식과 실질

입력 2017-11-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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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민감한 사안이긴 하지만 몇 마디 해 보자. 다름 아니라 청와대가 쓰는 돈 이야기이다.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다 뭐다 하여 이왕 이야기가 돌고 있는 판이니 말이다.

알다시피 한때 청와대는 천문학적인 돈을 썼다. 대기업 등으로부터 돈을 받아 정치 자금으로 뿌리기도 하고, ‘떡값’과 ‘용돈’에 ‘전별금’까지 주기도 했다. 지금도 어느 ‘통 큰’ 대통령은 생각했던 것보다 한 자리 수가 더 많은 돈을, 또 다른 ‘쪼잔한’ 대통령은 한 자리 수 더 작은 돈을 주더라는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전설’이다. 기업회계와 금융 관행이 투명해지고, 민주화와 함께 정치가 이만큼이라도 된 상황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기업 등 외부의 돈을 받아 쓰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세상이 하루아침에 다 바뀌었겠나. 대통령은 여전히 많은 돈을 써야 한다. 사람이나 단체 만나 격려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인사하고 예의 차리는 것이 다 돈이다. 이를테면 어느 고찰(古刹)에 들렀다가 낡은 화장실을 걱정하는 높은 스님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겠나. 아무 말 없이 그냥 나올 수 있겠나.

해당 부처에 해 주라 지시하면 될 것 아니냐 하지만 정부 운영이라는 것이 그렇지가 않다. 대통령이 되어서 그런 것 하나하나를 지시하는 것도, 또 해당 부처의 예비비를 쓰게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체면도 서지 않고 요건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청와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하지만 연간 800억 원 정도 되는 청와대 예산으로는 이 모두를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어쩌겠나. 결국 이런저런 방법으로 각 부처와 행정기관의 예산을 당겨쓰게 된다. 가장 대표적 방법의 하나가 행정자치부의 특별교부세 일부를 가져다 쓰는 것이다.

특별교부세는 지방정부 간의 재정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조성되는 지방교부세의 일부이다. 지방교부세의 3%로 연간 1조 원 정도 되는데, 가뭄이나 대형사고 등 ‘특별한 재정수요’가 발생했을 경우 교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특별한 재정수요’에 있어 ‘특별한’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인데, 여기에는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이 따를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관리주체인 행정자치부 장관이나 정치적ㆍ행정적 영향력이 큰 사람이 특별하다고 하면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역대 청와대는 이 특별교부세의 운영에 깊이 간여해 왔다. 아예 그 일부를 청와대 몫으로 배정받아 쓰기도 했다. 그만큼 청와대의 유용한 재정적 자원이 되어 왔다는 말이다. 주고 싶은 사람이나 지역에 일종의 ‘시혜(施惠)’를 베풀면서 말이다.

청와대가 다른 기관의 돈을 당겨쓰는 또 하나의 예가 바로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이다. 이 특수활동비는 사용 목적이 포괄적인 데다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아 청와대 입장에서는 매우 편리한 돈이다. 주는 쪽 역시 청와대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점에서 주고 싶어 한다. 바로 손이 닿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만큼 악성이다. 특별교부세만 해도 그 사용처가 명확하고 처리 과정 또한 쉽게 추적할 수 있는 데 비해 이 특수활동비는 그렇지가 못하다. 사적 유용이나 오용의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정부에 따라 이 특수활동비를 쓰기도 했고, 안 쓰기도 했다. 이를테면 박근혜 정부는 썼고 참여정부는 쓰지 않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느 정부가 썼고 어느 정부가 안 썼느냐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잘못된 관행 전체를 바로잡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와대가 각 부처나 행정기관의 예산을 당겨쓰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대통령 초청 영빈관 행사비용 등 청와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을 관련 부처에 전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것 또한 바로잡아야 한다. 당연히 청와대가 그러지 않고도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게 해 주면서 말이다.

명색이 법치국가이다. 청와대부터 형식과 실질이 달라서야 되겠나. 또 이를 그대로 두고 청와대 예산을 줄였다 자랑하면 무얼 할 것이며, 이를 깎았다고 으스대면 무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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