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권의 생글센글] 새희망씨앗, 우리는 사이비를 구별할 수 있을까

입력 2017-08-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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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대한 사회적책임을 토론하자

사람의 고정관념은 무섭다. 한번 확정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기부에 대한 시선이 그렇다. 우리 사회는 복지에 대한 수요보다 공급이 적다. 사회 구석구석에는 다양한 나눔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기부를 향한 시민의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한국에서 모금의 역사가 그리 떳떳하지 않았다. 한 때 국가가 나서서 전 국민을 상대로 준조세성격의 각종 모금을 동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교실 칠판에 ‘성금 안 낸 사람’ 명단이 빨간 분필로 적히던 시절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게 1986년 전두환 대통령 시절의 평화의 댐 성금 모금이다. 88서울올림픽으로 온 국민이 들떠 있는 시기에 전두환 정권은 북한이 서울을 침몰시키기 위해 금강산댐을 짓고 있으니 평화의 댐을 지어야 한다며 성금을 모았다. 북한의 물 공격 위협은 과장된 것이었고 언론은 사실에 대한 보도 없이 군부 정권이 불러주는대로 기사를 작성하며 국민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민간도 잘못을 저질렀다. 복지시설에서 자행되는 입소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대표적이다. 행정의 감시가 미치지 않는 시설에서 기업과 시민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을 시설장의 치부를 위해 횡령하고, 정작 시설의 입소자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거나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일들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었다. 내부자가 아니면 접근조차 힘든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이 나라의 기부와 비영리단체의 활동 모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도 민간의 복지시설도 민주화되었고 발전되었다. 요즘은 비영리조직들이 사회의 변화를 잘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인 질문들이 던져진다. 나눔이 필요한 이들의 불쌍한 모습만을 집중 조명해 동정심에 호소하는 모금 방식이 가진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비영리단체가 기부금에서 운영비를 어느 정도의 비율로 책정해야 단체의 역량이 증대되고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이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 비영리단체의 공시를 포함해, 단체의 건강성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인지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지금은 어떻게 새로운 기부문화를 만들고 비영리활동의 효과성과 건강성을 강화할지에 대해 뜨겁게 논쟁하는 시대다. 기부에 대한 열광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새희망씨앗 사건이 발생했다.

새희망씨앗은 전국에 콜센터를 두고 모금 영업을 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방식으로 국민 2천만명의 개인정보를 습득해 기부독려전화를 했고, 이중 5만명으로부터 120억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하곤 이를 횡령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수법은 정교했다. 홈페이지엔 후원금 사용내역도 공개되었고, 지역아동센터와 협약식을 맺은 사진들이 주기적으로 올라왔다. 유명한 복지단체와 협력을 했고, 새희망씨앗을 취재한 언론 기사도 적지 않았다. 이 사건은 생각보다 지능적이고, 그래서 논쟁적일 수 있다.

새희망씨앗은 기부자로부터 어떠한 강압도 없이 기부를 받았고, 실제로 지역아동센터에 온라인교육콘텐츠를 볼 수 있는 아이디와 패스워드, 그리고 태블릿 기기를 제공했다. 기부자에겐 기부금영수증도 제공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그들이 물리적으로 기부를 받은 액수에 비해 아주 작은 금액을 기부했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그들이 지역아동센터에 제공한 콘텐츠의 가격은 그들이 책정하기 나름이다. 심지어 그들은 자신들이 제공한 콘텐츠가 아이들에게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혁신적인 방식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추정하건데 그들이 사적인 목적으로 유용한 돈의 액수는 18억원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법은 모금된 금액의 최대 15%를 기부금품의 모집, 관리, 운영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금된 금액인 128억원의 15%에 해당하는 금액만 전용했다면 양반이다. 페이퍼컴퍼니나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 있는 제3의 업체를 통해 모금된 기부금을 세탁하고 그 돈을 설립자가 사유화하는 방법 등을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희망씨앗이 차려놓은 잔칫상에 기부금의 모집과 활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전문가나 법조계의 인사가 개입되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기부금품의 모집 및 사용에 관한 법률’은 모집자가 “모집ㆍ사용계획서와 달리 기부금품을 모집한 경우”나 “기부금품을 모집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승인을 받지 안니하고 기부금품을 모집목적과 유사한 용도로 사용한 경우”에 등록청이 모집자의 “등록을 말소”하고, “모집된 금품을 기부자에게 반환할 것을 명령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일면 강력해보인다. 그러나 이 법률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지능화된 사기 행각 앞에서는 무력하다. 그것을 새희망씨앗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법을 치밀하게 만든다고 해서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건강한 비영리조직의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

사이비(似而非). 비슷하지만 가짜에 불과한 것. 표면적으로 공익을 위한 비영리활동을 하지만 내부의 재무구조는 설립자와 그 측근의 돈벌이에 불과한 짓은 아주 전통적이지만 여전히 통한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나라 전체를 들썩이게 만든 최순실 씨이고, 작은 최순실들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존재한다. 그들은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서 승승장구하며 스스로를 혁신가라고 치켜세울 수도 있다. 이들이 사이비에 불과하다는 것은 어쩌면 그들 자신만이 아는 비밀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이들 사이비를 진짜와 구별하고, 진짜에게 응원을 보내고 사이비에겐 철퇴를 내리는 건강한 생태계를 확립하지 못했다.

당장 걱정인 것은, 이런 작은 최순실들 때문에 지금껏 쌓아올린 기부문화와 생태계가 통째로 의심당하는 현실이다. 기부를 하지 말자고 하는 일각의 주장은 극단적이다. 기부를 잘 해야 한다. 다만 기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기부자의 노력보다는 비영리조직과 관련부처가 치밀하게 노력해야 할 일이다. 아직까진 부족했다. 이제라도 시작해야 선량한 피해를 막을 수 있고, 사회의 신뢰자본이 성숙한다. 기부금품의 모집과 사용에 대한 사회적책임을 함께 토론하자.

고대권 코스리(한국SR전략연구소) 미래사업본부장 accrea@kos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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