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설 대목이지만… 여전히 둘로 갈린 노량진 수산시장

입력 2017-01-20 11:22 수정 2017-01-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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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이 신(新)시장과 구(舊)시장으로 갈라선 지 10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갈등이 봉합되지 않고 있다. 민족 대명절인 설을 앞두고 소비심리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데다, 이웃 상인들 간의 반목으로 노량진수산시장엔 더욱 스산한 분위기가 젖어들고 있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노량진수산시장의 소유주체인 수산업협동조합 측은 지난해 3월부터 기존 노량진 수산시장을 현대화된 신축 건물로 이전을 추진했다. 하지만 판매 상인의 40%가 일방적인 시장 이전 추진을 거부하고, 구시장을 지키기로 결정하면서 이웃들간 간극은 점차 커지고 있는 모양새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길에는 양 갈래에 구시장과 신시장이 내건 현수막이 각자의 시장으로 고객을 안내하고 있다(김정웅 기자 cogito@)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길에는 양 갈래에 구시장과 신시장이 내건 현수막이 각자의 시장으로 고객을 안내하고 있다(김정웅 기자 cogito@)

노량진수산시장은 수협이 지난해 10월 새 건물을 완공하고 구시장 입점업체를 모두 옮기려 했으나, 기존 상인들이 반발하면서 입주 대상 상인 650명 가운데 200여명은 옛 시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상인들은 신축건물로 이전하면 임대료가 높아지고 공간은 좁아지는데도, 수협이 아무런 대안 없이 이런 문제를 외면하고 구시장 상인들의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구시장에서 영업 중인 상인 A씨는 하루가 멀다하고 수협 측의 ‘공실관리’가 들어온다고 하소연한다. 공실관리란 구시장 상인이 신시장으로 이전하며 자리가 빈 점포, 즉 공실을 다른 상인들이 무단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수협 측에서 제지하는 행위를 말한다. 구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작년 7월부터 연말까지 수협측에서 대동한 수십 명의 사람이 몰려와 공실관리를 진행했다고 했다. 공실관리라는 명목으로 시장 분위기를 어수선하게 만들어 고객의 발길을 돌리게하는, 사실상의 영업방해라고 상인들은 주장한다. 상인들은 평소보다 몇 배의 매출이 나와야 할 설 대목에도 수협의 공실관리로 시장이 어수선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고 있다.

구시장 내 공실에는 목재 합판과 철근 몇 무더기가 놓여 있는 곳도 있다. 상인들은 수협에서 공실관리를 나오는 직원들이 항상 이 자재들의 개수를 파악하고 간다고 말했다. 자재가 조금이라도 없어지면, 그 책임을 상인들에게 묻기 위해 뒀다는 것이 상인들의 주장이다.

▲구시장 구석구석에는 신시장으로 이전한 상인들이 원래 사용하던 점포 자리가 공실로 남아있었다. 상인들은 수협 측이 공실 곳곳에 놓아둔 건축자재의 개수를 민감하게 파악해서 모자를 경우엔 상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한다고 주장했다.(김정웅 기자 cogito@)
▲구시장 구석구석에는 신시장으로 이전한 상인들이 원래 사용하던 점포 자리가 공실로 남아있었다. 상인들은 수협 측이 공실 곳곳에 놓아둔 건축자재의 개수를 민감하게 파악해서 모자를 경우엔 상인들에게 책임을 물으려한다고 주장했다.(김정웅 기자 cogito@)

노량진수산시장이 국내 대표 수산시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도매시장임에도 일반 고객들을 상대로 한 소매 판매도 겸했기 때문이다. 수산시장의 소매 판매점에서 횟감을 골라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에서 회를 먹는 것은 노량진수산시장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다. 그러나 이제 노량진 구시장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수협 측이 구시장 식당으로 공급되는 가스와 수도, 전기 등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식당을 운영하던 상인들은 모두 신시장으로 터를 옮겼다. 식당 이용을 할 수 없게 되면서, 구시장의 손님 역시 그만큼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구시장에는 수산물을 구입해 회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폐쇄됐다(사진 위). 수산시장 건물의 소유주인 수협 측이 전기와 가스 등의 공급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상인들은 설명했다. 회 등을 취급하는 식당은 신시장으로 이전해 있었다(사진 아래).(김정웅 기자 cogito@)
▲구시장에는 수산물을 구입해 회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폐쇄됐다(사진 위). 수산시장 건물의 소유주인 수협 측이 전기와 가스 등의 공급을 차단했기 때문이라고 상인들은 설명했다. 회 등을 취급하는 식당은 신시장으로 이전해 있었다(사진 아래).(김정웅 기자 cogito@)

수협과 상인 간의 갈등은 여전히 심각했다. 취재 도중 수협 측에서 동원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상부에 보고해야한다며 취재 기자를 촬영하려하자, 근처의 상인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상인들은 “너희가 뭔데 사진을 찍느냐마느냐 하느냐”, “어디서 시장에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느냐”라고 외치며 매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용역업체 직원을 제지하던 상인 중 한명이었던 B씨는 “수협이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인건비를 크게 들이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게 바로 돈 있는 사람들의 권력 남용이다”라고 말했다.

공실관리 등의 조치가 너무 위압적이라는 상인들의 의견에 대해 수협 측은 “수협 재산을 상인들이 무단으로 이용하는 불법행위를 방지하는 데에만 제한적으로 공실관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수협노량진수산주식회사의 한 관계자는 “용역이 사실 철거를 진행하거나 하는 무리한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다”라며 “최소 인원으로 관리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 상인들을 겁박한다는 일부 주장은 무리한 이야기”라고 상인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구시장 주차장에 신시장 관계자가 주차하지 말 것을 공지하는 안내문. 구시장과 신시장 상인들은 서로 상대방 건물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김정웅 기자 cogito@)
▲구시장 주차장에 신시장 관계자가 주차하지 말 것을 공지하는 안내문. 구시장과 신시장 상인들은 서로 상대방 건물의 시설을 이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김정웅 기자 cogito@)

상인들은 구시장 상인들과 신시장 상인들 간의 큰 불화나 다툼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마음이 모두 함께 구시장에서 장사할 때와 똑같을 수는 없다고 털어놓는 상인들도 있었다. 구시장 상인 C씨는 “그 사람들(신시장 상인)도 다 사정이 있는거 왜 모르겠나. 원래가 매일 얼굴 맞대고 살던 사람들이다”라고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히 떨어져 장사하고, 시장 이전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다르다보니 아무래도 사이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신시장 상인인 D씨도 “우리도 시장이 썩 맘에 드는 것은 아니었는데, 먼저 계약금을 지불하는 바람에 넘어온 것도 있다”라며 “사실 제일 좋은건 시장이 하나가 되는 것이고 우리 상인들 모두 그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상인들간의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지만, 신시장 상인들이 구시장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게끔 하는 안내문에서 상인들 간의 미묘한 긴장감을 감지할 수는 있었다.

▲수협 측이 사방에 써놓은 ‘철거예정’이라는 글귀를 구시장 상인들은 ‘청결예정’으로 바꾸어 적어 놓았다(사진 위). 일부 벽면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수협 측이 그 위에 무언가를 덧쓰지 못하게하려고 그려둔 것이라고 상인들은 설명했다(사진 아래).(김정웅 기자 cogito@)
▲수협 측이 사방에 써놓은 ‘철거예정’이라는 글귀를 구시장 상인들은 ‘청결예정’으로 바꾸어 적어 놓았다(사진 위). 일부 벽면에는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이는 수협 측이 그 위에 무언가를 덧쓰지 못하게하려고 그려둔 것이라고 상인들은 설명했다(사진 아래).(김정웅 기자 cogito@)

노량진 구시장 벽면 온 사방에는 ‘청결예정’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흉물스럽게 쓰여있었다. 신시장으로의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수협 측에서 벽면에 쓴 ‘철거예정’이라는 글귀를 ‘청결예정’으로 고쳐놓은 것이었다. 태극기가 그려져있는 벽면도 있었다. 한 구시장 상인은 “태극기를 그려놓으면 수협이 감히 그 위에도 철거예정이니 뭐니 쓰지 못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려놓은 거다. 그래도 그 위에 ‘철거예정’을 쓰기도 하더라”며 쓴웃음을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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