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칼럼] 한국인들의 마음을 구원하라

입력 2016-07-26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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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필 겸 미래설계연구원장

두 가지 만화 이야기부터 해보자. 첫 번째는 원숭이와 거북의 대화다. 원숭이는 모르는 게 없다. 거북에게 뭐든지 물어보라며 유식 박식을 뽐낸다. 그런데 원숭이의 해박함에 감탄하던 거북이 만화의 세 번째 칸에서 “그런데 넌 꿈이 뭐야?” 하고 묻자 원숭이는 땀만 흘리며 대답을 하지 못한다. 이건 우리 청소년들 이야기이다.

두 번째 만화는 윤서민 작 ‘朝이라이드’의 157화 ‘오랜만에 찾아온 조국’이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 잠시 휴가로 귀국한 사람이 우뚝우뚝 고층 건물, 골목마다 중형차, 차량마다 블랙박스, 차량번호 자동인식 주차장, 어디서나 빠른 인터넷, 버스 도착 알림판, 거미줄 같은 지하철과 안전한 스크린 도어, 기능이 뛰어난 교통카드에 놀란다.

그뿐인가. 수도 없는 TV채널, 언제나 문 여는 점포, 편리한 대리운전, 어디든 갖다 주는 배송서비스, 해외여행 인파로 덮인 공항, 미국에서는 엄두도 못 낼 건강검진과 치과 진료 이런 것을 보며 그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간 듯한 낯섦을 함께 느낀다.

그런데 그를 진짜 놀라게 한 것은 만나는 사람마다 “죽겠어, 힘들어, 정치가 개판이야, 나라가 썩었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뛰는 전셋값, 여자가 다니기 불안한 밤길, 정리해고 기타 등등 55인치 대형TV 속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다들 불평하며 아우성 난리였다.

평균수명, 치안, 위생수준, 도시인프라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나라, 미국보다 나은 게 많은 나라에서 이렇게 다들 죽는 소리를 하다니.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예전엔 조국이 잘살게 되기를 기도했는데 이제는 조국의 국민들 마음에 평안이 깃들기를 기도해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외롭다. 늘 화가 나 있다. 꿈이 없다. 어려울 때 도움 받을 수 있는 가족, 친구가 없는 사람들이 많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OECD 사회통합지표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사회적 관계(사회적 지원 네트워크)’ 항목에서 10점 만점 중 0.2점을 받았다고 밝혔다. 난관에 처했을 때 의지할 가족, 친구가 있다면 이 점수가 높아지는데, 그런 사람이 있다는 한국인 응답자는 72.4%에 불과했다. 조사 대상 36개 국가(OECD 34개 회원국+브라질·러시아) 중 가장 낮은 비율이다. 특히 50세 이상은 회원국 중 꼴찌였다.

나이가 들수록, 살아갈수록 의지할 곳이 적고 사회적 관계가 이처럼 공고하지 않으니 세대갈등이 심해지고 사회통합도 어려워진다. 한국인들의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것 같고, 저마다 마음속에 거대한 싱크홀을 키워가고 있는 것 같다. 정이 통하는 마을, 이웃을 돌보는 사회, 도움을 주고받는 공동체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그러니 자살률, 1인 가구, 고독사의 증가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특히 고독사를 의미하는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1245명이나 됐고, 그중 40∼50대 남성이 38.3%인 483명이었다. 며칠 전에는 서울의 고독사(의심사례 포함) 실태 자료(서울시복지재단)가 공개됐다. 서울에서는 하루 6.4건가량 고독사가 발생하는데, 가장 많은 곳이 뜻밖에도 부유층이 많이 사는 것으로 알려진 강남구였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40~64세의 남성 1인 가구가 위험군이었다.

예전엔 못살고 가난해도 마음은 공허하지 않았다. 이웃이 있었고 어른이 있었다.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불편을 참고 견디며 서로 돕고 살았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지향하고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이 편안하지 못한지 암울하고 답답하다. 삶고 찌는 이 폭염의 계절이 더 덥게 느껴진다. 정말 무슨 수가 없나. 한국인들의 마음을 편하게 구원해주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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