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發 유엔 재정난에⋯제네바 국제기구 ‘쟁탈전’

입력 2026-09-0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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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중동 등 20개국, 유치전 경쟁

▲유엔 제네바 사무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유엔 제네바 사무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외원조 삭감으로 유엔이 재정난에 빠지면서 ‘국제외교 수도’인 스위스 제네바에 몰려 있던 국제기구를 유치하려는 국가 간 경쟁이 거세지고 있다.

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용한 스위스 당국자들에 따르면 유럽연합(EU) 회원국 수도들과 걸프 국가들이 제네바에 있는 국제기구와 직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제네바에는 현재 유엔 유럽본부를 비롯해 수십 개 국제기구와 수백 개 비정부기구(NGO), 각국 외교공관이 자리 잡고 있다. 스위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제네바에는 약 450개의 국제기구와 NGO가 있으며 약 185개국이 상주대표부를 두고 있다. 이러한 이른바 ‘국제도시 제네바’로 불리는 이 생태계는 연간 약 40억 스위스프랑(약 6조6200억원)의 경제활동을 창출하는 것으로 스위스 외무부는 추산했다.

그러나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대외원조 대부분을 동결하고 세계보건기구(WHO)에서 탈퇴한 것은 물론 여러 유엔 기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하면서 제네바는 수십 년 만에 가장 큰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국가가 다자주의 체제에 대한 분담금을 줄이고 국방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지출을 늘리는 상황이다.

이로 인한 예산 위기로 국제기구들은 감원과 신규 채용 동결에 나서는 동시에 비용이 더 저렴한 지역을 물색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더군다나 제네바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한 도시임에 따라 이전 압력은 더욱 커졌다.

스위스 당국자들은 FT에 “약 20개국이 다자주의 체제를 뒤흔드는 재정적 혼란을 이용해 자국을 외교 허브로 키우려 하고 있다”면서 “오스트리아ㆍ프랑스ㆍ독일ㆍ이탈리아ㆍ스페인을 비롯해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유엔 기구나 제네바 국제 생태계의 일부를 유치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한 스위스 당국자는 “많은 유럽 국가가 국제기구 유치국으로서의 야심을 갖고 있으며 지금의 위기 상황을 활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 한다”며 “노골적인 빼오기”라고 언급했다. 제네바주 국제관계국장인 베아트리체 페라리는 “지난해 재정 지원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특히 유럽의 여러 경쟁 도시들에 실질적인 기회가 열렸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실제 WHO는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본부 기능 일부를 프랑스 리옹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유니세프(UNICEF)는 수백 명의 인력을 로마를 비롯해 비용이 더 저렴한 도시로 옮기고 있으며 국제노동기구(ILO)는 일부 직원과 기능을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기존 훈련센터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스위스 당국자는 FT에 “일부 회원국이 제네바에서 자국 도시로 직원 한 명을 옮길 때마다 일정 금액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는 사례도 목격했다”고 알렸다.

제네바의 또 다른 정치인은 각국 정부가 제네바의 전체 생태계를 그대로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특정 전문 분야를 집중적으로 유치하는 전략을 점점 더 많이 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정치인에 따르면 스페인은 발렌시아를 디지털화와 데이터의 중심지로 육성하려 하고 있다. 프랑스는 리옹을 국제 보건 거버넌스 허브로 육성하는 한편 파리의 교육 분야 위상을 강화했다. 독일은 본에 자리 잡은 환경 관련 국제기구들을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한편 베를린의 국제적 역할 강화에 나섰다. 오스트리아 빈 역시 유엔 허브로서의 입지를 넓히려 한다.

스위스 당국자들은 걸프 국가 가운데서는 카타르를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봤다. 카타르가 국제 분쟁의 중재자로 입지를 굳혔기 때문이다. 카타르 수도 도하는 가자지구 문제와 최근 이란 관련 외교를 포함해 중재 과정에서 역할이 커졌다. 뿐만 아니라 카타르는 인도주의 활동의 더 큰 허브로 부상하기 위해 이와 연계한 매우 매력적인 재정적 제안을 결합해 제안하고 있다고 스위스 당국자는 공유했다.

세계 각국의 유치 공세에 맞서 스위스도 대응에 나섰다. 스위스 연방정부는 유엔 기구들이 직면한 재정 위기와 국제기구 유치를 둘러싼 국가 간 경쟁 심화를 이유로 제네바에 2억6900만 스위스프랑을 지원하는 방안을 6월 승인했다. 이 지원 패키지에는 재정난을 겪는 국제기구를 위한 긴급 자금과 회의·디지털 인프라 투자, 국제기구들이 사용하는 건물의 개보수를 위한 7800만 스위스프랑 규모의 무이자 대출, AI를 비롯한 신흥 기술 분야에서 제네바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지원 등이 포함됐다.

연방정부뿐 아니라 지방정부와 민간도 지원에 참여하고 있다. 제네바주와 롤렉스를 지배하는 한스 빌스도르프 재단은 향후 5년간 국제도시 제네바를 지원하기 위해 5000만 스위스프랑 규모의 기금을 조성했다. 제네바주는 NGO 지원에 1000만 스위스프랑을 별도로 배정했으며, 제네바시도 추가로 200만 스위스프랑을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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