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앞면만 봐서는 안 된다. 미국이 내미는 계약서에는 조건이 붙어 있다. 미국에서 돈을 벌려면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 한화디펜스USA는 지난 4월 앨라배마주 오펠라이카의 시설을 임차했다. K9 차륜형 자주포의 현지 통합·시험 거점이다. 향후 미국 내 생산 확대도 추진한다. K9의 미국 진출과 현지화 전략이 함께 가는 셈이다.
K-조선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자국 조선소만으로 필요한 함정을 제때 공급하기 어렵다. 한국 조선사의 생산성이 필요한 이유다. 미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은 최근 HD현대중공업·한화오션·삼성중공업을 잇달아 방문해 함정 건조 역량을 살폈다.
문제는 방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조선소에 일부 함정 건조를 맡길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동시에 미국에 투자한 기업에 기회를 주겠다는 조건을 붙였다. 업계에선 이를 단순한 시장 개방으로만 보지 않는다. 해외 발주라는 당근을 내밀면서 추가 투자를 요구하는 노골적인 메시지가 담겼다고 본다.
미국이 원하는 것도 단순 발주가 아니다. 현지 조선소를 사고 설비를 늘리길 원한다. 한국의 기술과 생산성도 미국 조선업 재건에 활용하려 한다. 한국 기업에는 기회인 동시에 비용이다.
철강도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미국 루이지애나에 연산 270만t(톤)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 설립에 착수했다. 투자 금액은 58억달러(약 8조원). 자동차와 배터리가 먼저 미국으로 갔다. 이제 철강과 조선, 방산도 뒤를 잇고 있다.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미국 시장의 입장료가 되는 셈이다.
안보도 별개로 보기 어렵다. 미국은 한국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파견 등을 검토 중이다. 한국 조선사들의 MRO와 방산 협력이 커지는 만큼 동맹의 부담도 커질 수 있다.
미국 시장은 놓칠 수 없다. 한국 방산과 조선이 한 단계 더 성장할 기회인 것도 맞다. 그러나 ‘몇 조원 수주’라는 숫자만 보고 기뻐하는 건 단기적인 시각이다. 수주 뒤에는 대규모 현지 투자가 따라온다. 생산과 기술의 일부도 미국으로 향한다. 국내에 남는 일자리와 부가가치가 얼마나 될지는 또 다른 문제다. 수주액만큼 중요한 것이 그 대가다. 미국 시장의 입장료는 결코 싸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