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대출도 갚으라니”…세금·대출에 다주택자 버티기 임계점

입력 2026-08-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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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다주택자 상환 압박 본격화
다주택자 매도ㆍ보유ㆍ증여 등 저울질
내년 6월 전 다주택자 매물 늘 수도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에 아파트가 빽빽하게 서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에 아파트가 빽빽하게 서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투데이DB)

#규제지역에 주택 2채를 보유한 A 씨는 최근 은행으로부터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약 10년 전 주택을 매입하면서 받은 대출을 9월까지 상환해달라는 통보였다. 그동안 한 번도 상환 요구를 받은 적이 없었는데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를 강화하면서 장기간 유지해온 대출까지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 A 씨의 고민은 대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세 부담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보유 주택 가운데 한 채를 처분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A 씨는 “10년 가까이 유지해온 대출인데 갑자기 상환하라니 난감하다”며 “세 부담도 늘어난다고 하니 결국 한 채를 팔아야 하는 것 아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다주택자 대출 만기연장 제한에 이달 세제 개편에 따른 보유세 강화까지 맞물리면서 보유 주택을 처분하려는 집주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직 시장에 급매물이 쏟아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대출 상환과 늘어날 세 부담을 동시에 감당하기보다 주택 수를 줄이는 게 낫다는 판단에 매도 시점을 저울질하는 다주택자들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1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다주택자 대출에 대한 만기연장 제한이 현실화하면서 중개업소에도 매도 여부와 시점을 묻는 집주인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들어 ‘은행에서 대출을 갚으라고 하는데 한 채를 지금 정리해야 하느냐’, ‘내년까지 가지고 있으면 세금이 얼마나 더 나오느냐’고 묻는 집주인들이 있다”며 “아직 가격을 확 낮춰서라도 팔겠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두 채를 계속 들고 가는 게 맞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앞서 4월 1일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발표하고 다주택자가 보유한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 담보대출에 대해 만기연장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신규 대출을 막는 것에서 한 단계 더 규제 수위를 높인 것이다.

규제 시행 이후 상당 규모의 대출이 은행권으로 회수되는 모습이다. 이양수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은행권 다주택자 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 등 현황'에 따르면 다주택자 대출 만기연장 제한이 시행된 4월 17일부터 6월 30일까지 은행권에서 회수된 개인임대사업자 대출은 2038억원(1078건)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만기가 도래한 5676억원(2309건)의 35.9%가 상환된 셈이다.

은행권에서도 이에 따라 만기가 돌아온 다주택자 대출에 대한 연장 제한을 본격화하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를 담보로 한 다주택자 대출은 만기 도래 시 예외 사유가 없으면 전산에서 만기연장을 강하게 제한해 사실상 상환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다주택자의 주택 처분을 유도해왔고 특히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상당수 매물이 소화된 만큼 추가 물량이 많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대출 상환과 보유세 부담이 동시에 현실화하면서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큰 강남권에서도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당장 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처분하는 사례보다는 향후 늘어날 보유 비용을 따져 매도와 증여 사이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강남에 한 채, 다른 지역에 한 채를 가진 고객 중 최근 ‘대출이 많지는 않지만 앞으로 계속 가지고 있어 봐야 부담만 커지는 것 아니냐’며 하나를 정리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상담한 경우가 있었다”며 “당장 돈이 급해서 파는 것은 아니어서 가격을 낮춰 내놓기보다는 매도 시점을 재거나, 어차피 자녀에게 넘길 집이라면 차라리 지금 증여하는 게 나은지 세금까지 따져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규제 강화에 대한 불만도 나온다. 강남구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대출 만기를 연장해주지 않는 방식으로 주택 처분을 압박해 집값을 낮추려는 것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 아니냐고 토로하는 고객들도 있다”며 “25년간 중개업을 해왔지만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매물을 유도하는 것이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흔들리는 다주택자의 심리와 이에 따른 상환 증가가 아직 본격적인 매물 확대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2789건으로 한 달 전 6만1475건보다 2.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서울 아파트 매물은 올해 초 5만 건 수준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앞둔 3~4월 7만~8만 건 수준까지 불어났지만 이후 다시 줄어 현재 6만 건 초반대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김효선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본지 자문위원)은 “만기가 도래하더라도 상환 여력이 있는 집주인도 있고, 다른 자금 조달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 만큼 곧바로 주택 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때문에 대출 규제의 영향이 단기간에 매물 증가 등 통계적으로 눈에 띄는 변화로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를 매물 증가가 본격화할 수 있는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대출 만기가 순차적으로 돌아오는 가운데 내년부터 보유세 부담까지 커지면 다주택 집주인들의 셈법이 달라질 수 있어서다. 특히 보유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을 넘기기 전에 주택 수를 줄이려는 매도 물량이 나올 가능성이 거론된다.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본지 자문위원)는 “현재는 기존 대출에 대한 상환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올해 보유세 과세기준일인 6월 1일은 이미 지난 만큼 다주택자들이 당장 주택을 처분하기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는 단계”라며 “내년에는 보유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6월 1일 이전에 주택을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매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여러 채 가운데 자산가치가 높은 주택을 남기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매물이 나온다면 상대적으로 외곽이나 선호도가 낮은 지역부터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며 “지금은 대출과 세제 부담이 동시에 커지면서 다주택자의 보유 심리가 흔들리기 시작한 초기 단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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