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SNS를 넘겨보다가 한 누리꾼이 남긴 글귀에 시선이 멈췄다. "자산 격차는 문재인 전 대통령을 몇 살 때 만났느냐로 나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자산 형성을 고민하는 주거 주기가 하필 부동산 격변기와 어떻게 맞물렸느냐를 꼬집은 서글픈 격언이다. 이 지독한 '타이밍의 잔혹함'을 마주할 때마다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현장의 체감 온도를 세심하게 되짚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진다.
현장을 취재하고 퇴근길에 마주하는 90년대생 친구들의 현실은 무력감 그 자체다. 대출을 활용해 불안하게나마 내 집 마련의 사다리를 탔던 윗세대와 달리 지금 청년들은 자리를 잡고 시장을 바라보기도 전에 문턱 자체가 너무 높아졌다. 다주택자 규제와 대출 규제가 맞물리면서 서울 변두리의 10억원 이하 아파트마저 매물이 마르고 1년 새 수억 원씩 뛰었다. 예산은 그대로인데 집값만 멀어지니 수험생이 지원 대학을 낮추듯 눈높이를 낮추다 결국 절벽 끝으로 밀려난다. 나 또한 매주 집값을 보며 한숨을 쉬는 처지다.
다주택자 투기를 잡고 1가구 1주택 원칙을 고수해 서민을 살리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취지는 이해한다. 주거 정의를 세우겠다는 선한 뜻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결과는 정책의 의도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정부를 믿고 기다리라"는 신호대로 성실하게 저축하며 차례를 기다린 이들은 도리어 폭등한 집값 앞에 깊은 박탈감을 느낀다. 서민을 위한다는 규제가 역설적으로 공급을 위축시키고, 실질적으로 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발을 묶는 병목현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대목이다.
정부가 다급하게 꺼내 든 비아파트 리모델링 활성화나 빌라 공급 대책도 당장 주거비에 허덕이는 사회초년생의 숨통을 일부 틔워주려는 진심 어린 처방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장 눈앞의 주거비를 아끼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자산을 안정적으로 모으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주거 환경이기 때문이다. 정작 수요가 몰리는 핵심지 주택 공급은 꽁꽁 묶어둔 채 우회적인 공급만 서두르는 것은 청년들의 근본적인 갈증을 채워주지 못한다.
노력의 여부가 아니라 '몇 살 때 어떤 정부를 만났는가'라는 운때가 자산 격차를 갈라버려선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을 만난 후 내 집 마련의 꿈은 가까워졌는가"라는 청년들의 소박한 질문에 정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좋은 의도만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시장이 원하는 곳에 진짜 필요한 집을 주는 유연한 정책 보완만이 청년들에게 끊어진 사다리를 복원해 주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