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나는 매뉴얼·민원·법적 부담...“엄두 안 나는 야외교육”
개인 책임에 두려운 현장...“정부 책임 함께 져야”

교육당국이 현장체험학습 안전 대책을 강화해왔지만, 실제 현장에선 모호한 기준과 과중한 책임이 교사들을 위축시키고 있다. 교사들은 “기준은 없고 책임만 있다”고 호소한다. 교실 밖 교육을 살리기 위해선 안전 강화뿐 아니라 국가와 교육당국이 책임을 함께 지는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최근 몇 년간 현장체험학습과 관련한 안전관리 강화에 집중해왔다. 교육부는 ‘제4차 학교안전사고 예방 기본계획(2025~2027)’에서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 안전관리 체계 구축, 현장체험학습 안전지원, 교원 보호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경기도교육청의 경우 현장체험학습에 14단계, 42개의 행정 절차가 요구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안전 대책이 오히려 교사 부담만 키웠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체험학습 버스기사 음주 측정이다. 일부 학교는 교사가 직접 음주 여부를 확인하고, 일부는 행정실이나 경찰 협조 방식으로 운영한다. 표준화된 지침은 없지만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학교와 교사 몫이 된다. 한 초등교사는 “기사 음주 확인은 출발 전 업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기준은 모호한데 책임만 분명하다”고 토로했다. 정부와 교육당국이 안전관리 강화를 주문하고 있지만 실제 실행 과정에서 상당 부분을 학교 재량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공통 기준이 없다 보니 교사들은 언제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다.
재량의 함정은 체험학습만의 문제는 아니다. 생존수영, 마약 예방 교육, 늘봄, 디지털교과서 등 새로운 교육‧정책이 도입될 때마다 교육 과정부터 학부모 안내까지 실무를 떠안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한 초등교사는 “인력 지원이나 안내도 없으니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악순환”이라고 짚었다.
최근엔 체험학습 사고와 관련해 교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례까지 나오면서 현장의 부담이 더욱 커졌다.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 민·형사상 책임 가능성이 겹치면서 교사들은 야외 교육 자체를 더 기피하고 있다. 부산의 한 초등교사는 “체험학습이 의무도 아니고, 선뜻 추진하기 망설여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99%가 학교 밖 교육활동의 민·형사상 책임 부담을 교육활동 위축 요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안전 강화와 교사 보호를 분리해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장평규 울산혁신연구소 대표는 “교육 당국이 현장과 함께 책임지는 체계가 필요하다”며 “법률 지원이나 교권 보호 장치가 명확히 마련되지 않으면 교사들이 안심하고 야외 교육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교사들은 정부 차원의 명확한 안전 기준 마련과 함께 이를 준수했는데도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교사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체험학습 시 안전 전문 인력 동행과 업체 안전 점검을 통합 관리할 수 있는 공적 지원 시스템 구축도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교육부는 올해 ‘학교민원 대응 및 교육활동 보호 강화 방안’을 마련했다. 학교민원대응팀 법제화 내용이 담긴 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지난달 국회를 통과했다. 이달 말 발표 예정인 현장체험학습 개선안에는 교사 면책 범위 확대와 사고 발생 시 지원 방안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교사 책임 판례에 따른 불안감 확산, 사고 때마다 비대해지는 안전 매뉴얼, 면책 범위의 불확실성 등이 문제”라며 “완전 면책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고의·중과실이 아닌 경우 보호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중요한 것은 교권 보호 논의가 학생·학부모 대 교사 갈등 구도로 흘러가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