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서 남산까지 1.1km 녹지축 연결

종로3가역 12번 출구를 나와 낡은 상가 건물을 따라 2분 남짓 걷다 보면 서울의 화려한 마천루와는 단절된 듯한 기묘한 풍경이 펼쳐진다. 음악사와 귀금속점, 조명 상점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거리 오른편으로는 낡은 건물 위를 거미줄처럼 뒤엉킨 전깃줄이 뒤덮어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국천사무료급식소 앞에 길게 늘어선 어르신들의 줄을 뒤로하고 세운 2구역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풍경은 더욱 척박해진다.
20년째 이곳을 지킨 상인 김 모 씨(60대·남성)는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물이 샐 때가 많다”며 “임대인이나 임차인이나 ‘언젠가 개발될 텐데’라는 생각에 큰돈 들여 고칠 엄두를 못 내고 그냥 견디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화가 심각하다 보니 고양이가 전깃줄을 밟고 지나가다 배선이 끊기는 일도 허다하다고 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 일대의 노후 건축물 비율은 97%에 달한다. 특히 화재 등 비상 상황 시 소방차 진입조차 불가능한 폭 6m 미만의 도로가 65%를 차지하고 있어 시민의 안전은 매일 위협받고 있다.
발걸음을 옮겨 세운상가 너머 충무로 방면의 세운 6구역에 다다르자 상가 곳곳에는 텅 빈 ‘공실’이 이어졌다. 리모델링 부품을 판매하는 상인 A 씨는 “공실이 된 지 수년째지만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지구는 소유권이 복잡해 일반 건축법으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으로 수용권을 부여하는 재개발법을 통해 정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세운지구에서 ‘녹지생태도심’ 전략을 추진한다. 핵심은 규제 완화와 공공녹지의 맞교환이다. 민간 재개발 시 용적률과 높이 제한을 풀어주는 대신 그 대가로 확보한 개발 이익을 도심 속 녹지 확충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재정비촉진계획(서울특별시고시 제2024-316호)에 따르면 이 사업은 종로구 종로3가동 175-4번지 일대 43만9356.4㎡를 대상으로 하며 203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계획의 골자는 세운·청계·대림·삼풍 등 기존 상가 군을 단계적으로 철거하고 그 자리에 광화문광장 3배 규모(약 13.6만㎡)의 대형 공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종묘에서 남산까지 1.1km를 잇는 ‘남북 녹지축’을 완성한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를 위해 민간 부지 내에 35~40% 이상의 개방형 녹지를 확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용적률 인센티브는 이번 사업의 실질적인 추진 동력이다. 기준 용적률은 600%지만, 녹지 조성 등 공공기여 수준에 따라 허용 용적률을 기존 800% 이하에서 1000% 이하로 완화한다. 특히 도로 등 기반시설을 추가로 설치해 제공할 경우 상한 용적률을 제한 없이 초과 적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도심 개발의 효율성과 경쟁력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현재 세운지구는 구역별로 사업 단계와 이해관계가 촘촘하게 얽혀 확연한 온도 차를 보인다. 세운2구역이 이제 막 주민 중심의 통합개발 논의를 시작한 초기 단계라면 세운3구역은 이미 고밀 복합개발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 잡으며 세운의 미래를 증명하고 있다. 을지로3가역 부근 최고 27층 규모의 주거·업무 복합단지인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를 비롯해 ‘세운 푸르지오 지팰리스’ 등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도심의 풍경을 바꿨다. 특히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은 2022년 청약 당시 70대 1이 넘는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데 이어 최근 전용면적 45㎡가 9억 2000만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인근의 공인중개사 B 씨는 “도심 한복판 역세권이라는 입지적 장점 덕분에 직장인과 1인 가구의 수요가 있다”며 “단지 내 도서관과 헬스장 등 신축 아파트가 가진 커뮤니티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젊은 사람들이 임장을 오는 편”이라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세운 4구역은 20년째 갈등의 정점에 서 있다.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단독 시행하며 약 1만3000㎡의 개방형 녹지를 조성할 계획이지만, 종묘 경관 보호를 둘러싼 국가유산청과의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등의 문제로 누적 채무만 약 7250억원에 달한다. 세운 4구역은 종묘 담장 경계에서 약 180m 떨어져 있어 서울 기준 100m로 정해진 ‘역사문화환경 보존 지역’ 밖에 있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이다. 이에 유산청의 앙각 기준(27도)을 확대 적용하는 등 경관 영향을 최소화하며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유산청과의 행정적 합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세운 5구역은 상생지식산업센터(5-2) 건립 등을 통해 기존 도심 산업 생태계를 보존하면서도 구역별 사업시행인가를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세운 6구역은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준비 중이다. 특히 PJ 호텔 부지를 포함한 6-1-3구역은 호텔 부지 전체를 공원화해 기부채납하는 대가로 용적률 1550% 이하, 최고 높이 199m의 초고층 복합단지가 들어서는 ‘중심상업지역’으로 확정됐다.
이와 같은 구역별 개발 불균형 현황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세운지구는 시가 강제로 밀어붙이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결국 주민들의 동의가 모여야 사업이 시작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직 논의가 정체된 구역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이끌어갈지가 남은 숙제라는 의미다.
본지 자문위원인 임미화 전주대 부동산국토정보학과 교수는 “세운지구만의 특색 있는 스토리텔링과 콘텐츠가 있다면 층수가 낮더라도 그 자산 가치는 초고층 빌딩보다 훨씬 높아질 수 있다”며 “토지주와 임차인 등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 합의가 쉽지 않겠지만, 결국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과 리더십을 갖춘 협의체가 구성돼 이들을 설득하고 끌고 가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