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자산 업계 고위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그는 가상자산 관련 세미나나 간담회가 열릴 때마다 발제자나 패널 섭외 1순위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스피커’ 역할을 내려놓겠다고 한다. 시간을 들여 목소리를 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 논의를 두고 한 말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상자산 업계의 각종 간담회는 대부분 기본법 논의에 집중됐지만, 올해 1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입법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한다.
우선 국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을 조율하고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과 최종 협의를 거쳐야 하지만 여건이 녹록지 않다. 이달 초 당정협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제한 등 핵심 쟁점을 논의할 예정이었으나 중동 상황 등 대외 변수로 일정이 순연됐고, 31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도 다른 주요 법안이 우선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민생 법안이 주목받으면서 애초 거론되던 상반기 처리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입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핵심 쟁점을 둘러싼 아쉬움도 이어진다.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서는 은행 중심 구조가 유력하게 검토되면서 핀테크 등 비은행 사업자의 참여 여지가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거래소 지분 제한 역시 위헌 소지 논란과 함께 업계의 창업·혁신 동력을 약화하고 산업 전반의 성격을 보다 보수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업계 지원과 직결되는 제안들이 핵심 쟁점에 가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시 제도 정비와 상장·유통 기준 명문화, 내부통제·전산 기준 마련, 준비자산·상환청구권 관련 규율, 자산 분류체계 정립 등 업계가 실무적으로 필요로 하는 과제들이 대형 쟁점에 가려 뒷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2단계를 넘어 3단계 법안을 고민할 때라는 제언도 나온다. 2단계 논의에서 주도권을 놓친 쪽의 선전포고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입법이 제자리걸음을 거듭할수록 3단계 법안을 주창하는 의견이 달갑게 들린다. 다만 다음 단계를 말하려면 먼저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 2단계 입법안에서 합의 가능한 부분부터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