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국내 벤처투자에 13조원 넘는 뭉칫돈이 몰리며 제3 벤처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지만 투자의 절반 이상이 업력 7년을 초과한 후기 창업기업에 쏠렸다. 초기 벤처 투자 증가율은 2%도 채 되지 않는 이른바 부익부빈익빈 현상으로 많은 스타트업들이 여전히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18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벤처투자액 13조6244억원 중 업력 7년이 넘는 후기 벤처 투자에 들어간 자금은 7조4156억원이다. 전년(6조3663억원)보다 16.5%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총 신규 벤처투자 증가율(14.0%)을 넘어선다.
반면 창업 3년 이내 초기 벤처 투자액은 2조2666억원으로 작년(2조2243억원) 대비 1.9%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전체 벤처투자액에서 초기 투자와 후기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벤처투자 쏠림현상은 더 뚜렷하다. 초기 벤처 투자 비중은 벤처붐이 일었던 2021년 19.2%를 찍은 뒤 2022년 26.9%로 늘었지만 이후 △2023년 24.6% △2024년 18.6% △2025년 16.6%로 3년 연속 위축됐다.
그러나 이 기간 후기 벤처 투자 비중은 2021년 44.4%에서 2022년 38.7%로 줄어든 뒤 △2023년 47.3% △2024년 53.3% △2025년 54.4%로 확대되며 반대 양상을 드러냈다. 역대 최대 규모의 벤처투자가 이뤄진 2021년 때보다 후기투자 금액과 비중 모두 확대됐다.
중기부는 "검증된 성장기업에 대한 투자가 선호되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벤처업계 관계자도 "작년 총 신규 벤처투자액이 13조원대로, 16조원에 육박했던 2021년 때에 한참 못 미치는데 오히려 후기 투자액이 4000억원 가량 늘어난 건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높은, 확신이 있는 중·후기 기업에 투자가 몰리는 것"이라며 "경제 상황이 불확실하다보니 투자 트렌드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옥석을 가리는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언론 보도와 투자 정보를 기반으로 한 더브이씨의 통계에서도 지난해 초기라운드(시드~시리즈A) 투자건수는 847건으로 전년 대비 40.4% 감소했다. 투자액(29.2%↓) 역시 1조9190억원으로 30% 가까이 줄었다. 중기(시리즈B~C)와 후기(시리즈 D~프리IPO) 투자액이 모두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또 정부의 정책의 기조와 글로벌 투자 트렌드가 AI·반도체·바이오 등 딥테크에 집중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벤처기업에 대한 관심이나 육성 정책의 축이 딥테크로 옮겨지고 있고, 이로 인해 벤처 창업의 질과 난이도가 모두 높아지면서 창업 자체가 쉽지 않아졌다. 엑셀러레이터 업계에서 초기투자를 할 곳이 많지 않다는 얘기들이 나온다"며 "또 딥테크를 창업한다고 해도 특성상 초기 3년간 성과를 검증하기 어렵다보니 자연스럽게 중후기에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고 설명했다.
특히 AI는 지난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정부가 발표하는 벤처투자 규모에선 국내 투자가 AI에 얼마나 집중되고 있는지 파악이 쉽지 않지만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CB인사이트의 경우 작년 3분기 기준 글로벌 벤처투자 중 AI가 차지하는 비중이 51%로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에선 그 비중이 85%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AI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크게 뛰고, 투자 빅딜이 이뤄졌다. AI 반도체 설계 기업인 리벨리온과 퓨리오사는 중기부가 3년 만에 발표한 2025년 기준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기업) 4개 기업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문제는 국내에선 같은 AI 벤처 중에서도 성과 중심의 중후기 기업에 투자가 몰린다는 점이다. 지난해 리벨리온은 시리즈C를 통해 3400억 원을, 퓨리오사는 시리즈C를 통해 1700억 원을 각각 유치했다. 이에 스타트업계에선 투자기관에서도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창업 1년 기업에 매출이 얼마인지는 묻는 게 현실이라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정부가 예산이 투입되는 모태펀드를 활용해 AI 집중도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기부는 모태펀드 창업초기 분야의 출자를 확대하고, 초기투자 의무 제안 펀드를 우대 선정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한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