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고 환경의 중요성을 무작정 강조하는 것이 올바른 입장은 아니다. 자녀의 소질(또는 성향)을 무시한 채 좋은 교육 환경(당근과 채찍)만 제공하면 명문대 유망학과에 들어갈 수 있다며 밀어붙인 부모 때문에 인생을 망친(극단적인 경우는 자살) 사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쌍둥이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다양한 특성에 대해 유전과 환경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즉 게놈 구성이 같은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따로 입양된(다른 환경) 사례를 분석했다. 이때 게놈이 50% 같은 이란성 쌍둥이의 사례를 비교해 유전의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했다.
수명은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대표적 특성이다. 재벌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요절한다면 불행한 운명일 것이다.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되는가는 모두의 관심사이고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수명 연구는 쉽지 않다. 최소한 100년이 넘는 기간의 데이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심에 비하면 수명 연구가 많지는 않은데 결론이 좀 뜻밖이다.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20% 내외로 나왔기 때문이다. 키나 성격 같은 역시 중요한 특성이 50% 수준인 데 비하면 훨씬 못 미친다. ‘장수는 집안 내력’이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유전이 수명에 꽤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 뜻밖이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가 주축이 된 공동연구팀은 이런 현상에 의문을 품고 수명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보기로 했다. 이들은 수명에 미치는 외재적 요인을 철저히 배제해 유전이 수명에 미치는 영향을 재평가했다. 여기서 외재적 요인이란 전염병, 사고, 기아 같은 무차별적인 위험으로 이로 인한 사망은 개인의 유전적 구성과 거의 관련이 없다. 아무리 장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기도 전쟁으로 먹을 게 없으면 얼마 못 가 굶어 죽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거 연구들은 외재적 요인으로 인한 사망 데이터를 제대로 솎아내지 않아 유전의 영향이 과소평가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연구 결과로 게놈에서 수명(또는 노화 속도)의 비밀을 찾는 연구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 20% 영향력 가설에 따르면 소위 ‘장수 유전자’를 찾는 데 연구비를 지원할 게 아니라 환경 요인을 개선하는 데 세금을 투입하는 게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번 연구 결과를 ‘유전은 숙명’이라는 식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수명의 절반 가까이는 비유전적 요인에 좌우되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생활 습관, 즉 각자의 노력에 따라 좌우되기 때문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은 내 수명에도 해당하는 삶의 태도인 셈이다.



